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작품으로 1987년에 개봉한 영화 [마지막 황제]는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였다가 역사적 변혁을 거치며 평범한 시민이 돼가는 푸이의 인생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으며, 모든 대사는 영어로 되어 있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며, 프랑스의 역사를 영어 대사로 만들어 놀랐는데, 중국의 제국이었던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의 이야기마저 레미제라블 개봉 훨씬 이전에 영어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역시 현대의 새로운 제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푸이는 고작 3세의 나이로 청나라의 황제에 오르지만 위안스카이와 쑨원과의 협약에 따라 이내 퇴위한다. 협약의 내용에 따라 외국 군주의 대접에 준하여 청나라의 황제 대우를 받지만 자금성 내에서만 한정될 뿐이었다. 1912년 신해혁명으로 실권이 사라지고 자금성 안에서만 자라야 했던 푸이는 영국인 가정교사 존스턴 밑에서 영국유학의 꿈을 꾸지만 결국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푸이는 존스턴에게 교육을 받으면서 양복, 자전거, 안경, 전화나 영어잡지 등의 유럽의 최신 수입품을 접하게 된다. 푸이는 자금성에서 생활을 하면서도 스스로 변발을 자르는 등, 존스턴이 가져온 서양의 생활양식과 사상의 영향을 받는다.

푸이는 이후 펑위샹의 쿠데타로 인해 결국 가족과 함께 자금성에서 쫓겨나지만, 자신이 대대로 내려오던 만주국의 영도자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일념으로 다시 만주국의 황제가 된다. 하지만 그를 도왔던 일본이 새로운 제국주의 야욕을 점차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푸이의 톈진 이주는 만주에 본격적 진출의 기회를 노리고 있던 일본 관동군과 푸이가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중화민국 정부는 만주에 강한 영향력을 가진 푸이의 행보에 곤혹스러워 했다.

푸이는 193431일에 만주국 황제에 즉위하여 강덕제가 되었다. 관동군의 주도에 의해서 만들어진 만주국의 헌법상에서는 황제는 국무원 총리를 시작으로 대신들을 임명할 수 있었지만, 차관 이하의 관료에 대해서는 1932년 조인한 <일만의정서>에 의해서 관동군이 일본인을 만주국의 관리에게 임명 혹은 파면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어서 관동군의 동의가 없으면 임면 할 수 없었다. 황제의 칭호는 허울뿐이었고 일본의 괴뢰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국체에 관련되는 중요 사항의 결정에는 푸이뿐만이 아니라 관동군의 인증이 필요하였고 만주국 관직의 약 절반을 일본인이 차지하였으며 건국 당초 만주국 독자적인 군대나 국적법이 존재하지 않는 등, 관동군의 영향력은 매우 컸다.

하지만 일본의 패망 이후 만주국의 사라지고, 푸이는 중화인민공화국의 포로로 잡혀 수용 생활 이후 인민정치협상회의의 전국위원을 지냈다. 제국의 황제에서, 평범한 정원사가 되어 살아가는 푸이. 이제는 외국인 관광객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곳으로 변한 자금성. 중화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푸이에 대한 자료를 찾으며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는 다음과 같은 인민푸이의 말년의 모습을 발견했다.

한 멕시코 기자가 푸이를 인터뷰하러 가서 마지막 황제 푸이는 처참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한 미국 언론의 오보를 상기시키자 맞다. 마지막 황제이며 일본 침략자들의 괴뢰였던 푸이는 이미 죽었다. 나는 새로 태어난 노동자다라며 푸이는 정부의 비위를 맞췄다. 친척이나 예전의 신하들, 식물원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황상(皇上)”이라고 부르거나 재미 삼아 어이, 황제라며 웃을 때도 나는 예전의 푸이가 아니다. 황제 푸이는 지은 죄가 커서 이미 죽었다. 나는 평민 푸이다라며 진지하게 말했다. 남들이 까먹을 만하면 오랜 기간 제왕 생활을 하다 보니 나쁜 습관이 몸에 뱄다. 아직도 완전히 떨쳐 버리지 못했다는 유의 말을 반복했다. 소속이 베이징식물원이다 보니 화단에 물을 주는 장면이 가끔 신문에 실렸다. 일반 중국인들은 푸이가 바느질하는 모습이나 빨래하고 청소하는 모습도 화보 등을 통해 자주 볼 수 있었다.

 

영화 속 화려하고 웅장한 자금성의 모습을 먼저 이야기 하고 싶다. 34년 전에 자금성을 방문했던 경험이 있다. 자금성은 베이징의 중심에 있는 명과 청 왕조의 궁궐이다. 자금성의 규모는 궁궐로는 세계 최대의 규모이다. 현재는 황실이 사라져서 중국어권에서는 주로 고궁으로 불리고 있으며, 192510월 고궁 박물원으로 용도가 변경되어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방문했을 당시, 한국의 궁궐을 압도하는 크기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이 자금성의 주인이었던, 청나라는 만주족과 한족이 명나라에 이어 만든 나라이다. 원래 청나라는 1616년에 여진족의 누르하치가 동북 지역에 건국한 금(후금)에서 시작하여, 훗날 청으로 국호를 바꿨다. 청나라 초기에는 훌륭한 황제들(강희제, 건륭제)이 통치했다. 한족의 중국 명나라뿐 아니라 주변의 몽골, 위구르, 티베트를 모두 정복하여 몽골 제국(원나라)을 제외한 역대 중국 왕조 중에서 가장 큰 영토를 이루었다. 청나라 시대에는 외국 무역이 더욱 활발해져, 은의 유입도 크게 증가하였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 자금성에 이어 인상 깊었던 장면은, 중국의 서구화를 갈망하며 서구문화를 적극 수용하려고 하는 푸이의 모습이다. 이는 푸이가 안경을 착용하고, 청나라의 복잡한 전통 혼례방식에 불만을 가지고, 탭댄스를 잘 추는 현대여성을 황후로 맞고 싶고, 서양식 단발을 도입하기 위해 변발을 잘라 주위를 경악시키는 행동에서 드러났다. 이미 아편전쟁, 태평천국운동, 청나라 내 변방의 반란 등을 통해 제국은 급격한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다.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마저 전통문화를 지키려는 노력보다 서구화에 편입돼 가는 모습 속에서 제국의 역사의 덧없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서구문화의 동경은 비단 푸이에게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서양의 일부일처제 및 신사조에 눈을 뜨고 푸이 곁을 떠나는 후궁 문수에게도 무너져가는 제국의 모습이 보였다.

상징적으로 자주 사용되었던 대사 “Open the door” 못지않게 영화 속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는 당신은 나에 대해 아는 게 없소라고 말하는 하인의 대사이었다. 실제 대사처럼 푸이는 하인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 권력이 사라진 자신에게, 자질구레한 일을 해주는 하인에게는 부인과 세 아이가 있는지 관심조차 없었던 것이다. 나는 어쩌면 청나라 멸망의 이유가 바로 이 대사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비단 청나라라는 중화제국 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제국, 혹은 위정자들이 백성들, 혹은 주위 나라들을 돌아보지 못한 채, 자기 자신밖에 볼 줄 모른다면 그 제국은 결국 멸망하고 만다.

 

4)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이탈리아 출신의 영화감독이다. 1962, 감독 데뷔작 [‘즉사혹은 냉혹한 학살자’]가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세계적인 영화감독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가 대담한 성적 묘사로 알려지면서 예술인가 포르노인가의 논의가 제기되었다.

 

5) 신해혁명(辛亥革命)1911년 청을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성립시킨 중국의 민주주의 혁명이다. 이 혁명은 중국사에서 처음으로 공화국을 수립한 혁명이라서 공화혁명이라고도 불린다.

 

6) 아편 전쟁(Opium Wars)19세기 중반에 청나라와 영국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7) 청나라 말기 홍수전이 창시한 배상제회라는 그리스도교 비밀결사를 토대로 청조 타도와 새 왕조 건설을 목적으로 일어난 농민운동(185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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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조페의 1986년 영화 [미션]은 스페인제국의 식민지 정책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신대륙 원주민들에 대해서, 스페인제국은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의 식민지 정복을 시도했다. 하나는 정치적 정복이었고, 다른 하나는 정신적 정복이었다. 이 영화는 정신적 정복에 더 집중해서 스페인제국을 그리고 있다.

 

스페인은 알폰소 10(1221-1284)가 나폴리를 정복함으로써 지중해로 진출하게 되었고, 시칠리아, 세르데냐, 동방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게 되었다. 14세기 후반 스페인에서는 재정복전쟁 와중에 까스띠야왕국과 아라곤왕국이 두각을 나타냈으며, 1479년 아라곤왕국의 페르난도2세와 까스띠야왕국의 여왕 이사벨(1451-1504)이 결혼을 함으로써, 스페인의 통일이 이루어졌다.

이 당시 스페인제국은 새로운 부의 원천을 찾고자 하는 현실적 열망이 강했다. 콜럼버스가 스페인제국의 아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을 찾아와 항해를 제안하면서 스페인이 다른 영토를 정복할 비용을 충당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신대륙 발견으로 이어져 멕시코와 페루에서 발견된 은의 유입으로 스페인제국의 막대한 부의 축적으로 이어졌다. 신세계의 은광은 1620년까지 은 생산량이 크게 증대되고 그 수준이 꾸준히 유지되었다. 스페인제국의 은광이 가지는 중요성은 본질적으로 심리적인 것이었다. 끝없이 유입되는 것으로 인식된 새로운 부는 왕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외국인 은행가들을 부추겨 펠리2세로 하여금 엄청난 대규모 사업들을 계획하게 만들었다. 이로서, 스페인제국은 생활이 더욱 풍요로워지고 문화 활동이 활발하였던 황금세기가 도래하게 되었다. 신대륙에서 유입되는 금과 은은 경제적인 부와 동시에 문화예술의 기틀이 되었던 것이다. 이 시대의 뚜렷한 2개의 문화적인 흐름은 르네상스와 바로크이었다.

 

한편 이 당시 가톨릭은 세속화되었고, 동시에 종교개혁으로 인해 그 권위와 실질적인 권세에 있어서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그런 종교개혁에 대한 반동으로 가톨릭교회 내부에서 일어난 교회 쇄신운동이 예수회였다. 종교개혁에 대한 반동이었던 만큼 보수적인 출발점을 가진 예수회였지만 그들의 전교(mission) 방식은 오히려 개혁적이었고, 상당한 융통성을 가진 것들이었다. 그들은 라틴 아메리카의 다른 백인들처럼 원주민들을 사람과 비슷한 짐승으로 보지 않았고, 그들도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수회 신부들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원주민들을 전도할 수 있도록 한 데에는 스페인제국의 이해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라틴 아메리카를 정복하고, 개척한 자들에게 스페인제국은 특별한 혜택을 주고 있었다. 그것은 엔코미엔다라는 것이었다. 엔코미엔다는 16세기 스페인령의 공역제도로서 이것을 받은 정복 이주민들은 인디오 원주민을 기독교도로 개종시키고 보호할 의무를 지님과 동시에 이들에게 강제 노역이나 공물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였다. 그런데 이런 혜택을 받고 있던 정복 이주민들의 힘이 점점 커지자 스페인제국은 이들을 적절히 견제해야 할 필요를 느꼈고, 그때 예수회 신부들의 선교활동을 적절히 이용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예수회 신부들은 잔악한 노예상인들로부터 원주민들을 보호하는 자치구역을 만들었고, 많은 도망 노예들이 이곳으로 탈출해왔다. 이런 예수회의 활동은 정복 이주민들의 반감을 불러왔고, 정복 이주민들은 시시때때로 원주민보호구역을 무력으로 공격하는 일도 잦았다. 실제로 예수회 신부들은 스페인 국왕의 승인 아래 무장을 허가받아 정복 이주민들과 전쟁을 벌인 적도 있었다.

1750년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이의 영토를 교환하는 국경조약이 체결된다. 이에 항의하는 원주민들과 예수회 신부들은 두 차례(1754, 1756)에 걸친 포르투갈과 스페인 군대의 무력 공격에 학살당하고 만다. 그리고 얼마 후에 스페인에서 예수회 추방이 시작되었다.

 

영화 [미션]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영화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신부가 원주민 지역으로 들어가 자신의 가방에서 오보에를 꺼내 연주를 하는 장면이다. 제국의 거대한 탐욕을 넘어, 인류애를 드러내는 종교의 숭고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노예상인 로드리고가, 자신이 학대하고 노예로 사냥했던 원주민들에게 용서와 사랑을 받으며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예수회 신부의 일원이 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이의 조약은 예수회 신부들이 사랑하는 원주민들을 다시 노예로 살아갈 것을 강요하게 만들게 되고, 영화 속 원주민들과 함께했던 예수회 신부들은 모두 전사하고 만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회 신부들을 설득하기 위해 교황청에서 파견되었던 주교는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쓴다. “표면적으로는 신부 몇몇과 과라니족의 멸종으로 끝났습니다만, 죽은 것은 저 자신이고 저들은 영원히 살아남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말입니다.” 살아남은 과라니족 아이들이 줄 끊어진 바이올린을 들고 더 깊은 정글로 숨어드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요한복음 1장의 말이 자막으로 올라간다. ‘빛이 어둠을 비춰도, 어둠이 이를 깨닫지 못하더라.’

 

영화를 보며 감동적이지만 한편으로 불편했던 것은, 영화가 지나치게 서구 중심적이고 기독교 중심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영화 속 스페인제국 침략에서 과라니족을 비롯한 원주민들은 또다시 타자화 되고 있다. 영화 속 과라니족은 지나치게 수동적이다. 제국과의 전투에서 과라니족이 아닌 예수회 신부들이 군을 지휘하고, 예수회 신부들마저 원주민들과의 융화 속에서 원주민에 대한 계몽의식과 선각자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원주민들의 피를 먹고 자란 스페인제국이 신에게 벌을 받았는지, 이후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스페인은 애초에 사회경제적 기반이 근대의 제국들과는 달랐다. 산업혁명을 통한 안정적인 재정력을 통해 제국을 확장시켜 나갔던 근대제국들과는 달리 스페인의 산업발달 수준은 후진적이고 과도기적 상황이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영토 확장을 했고, 내수 경제에 투자 되었을지도 모르는 이윤은 사실상 대부분 군비로 지출되었다.

전쟁은 사그라지지 않고 17세기까지 장기적으로 이어지는 국가 파산의 사슬을 촉발시켰다. 심지어 펠리페 2세 치하의 카스티야 재무국은 카를 5세가 야기 시킨 부채 부담에서 헤어날 수 없어서 매 20년마다 파산을 선고했다 후반기로 갈수록 제국의 이상보다는 오히려 경제적 현실이 스페인 정부의 정책 입안자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17세기 후반에 이르러 스페인 제국은 백성들과 관료들에게 평화의 요구를 받았다. 앞서 언급한 재정적 원인뿐만 아니라 스페인은 내부 행정적으로도 고충을 앓고 있었다. 아메리카 대륙으로 식민지 확장을 하면서 본국뿐만 아니라 식민지에서도 필요 이상의 관직들이 생겨났다. 세기를 거듭할수록 본국에서는 관료들의 통제력을 상실하였고, 식민지관료들은 중요한 지배층이 되어 본국으로부터 독립성이 높아졌다. 본국의 영향력이 적어지면서 원주민의 반란도 많아졌고, 18세기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시몬 볼리바르로부터 해방의 흐름이 불기도 했다.

다른 유럽 국가들에게도 끊임없이 위협을 받으며 스페인 제국은 한 세기의 마지막 4분의 3을 전쟁으로 소모했다. 스페인은 평화가 간절했지만, 평화는 스페인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다. 이런 총체적 난국 앞에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에 패하고 말았다. 그렇게 스페인 제국은 찬란하게 빛나다 지고 말았다.

 

1) 르네상스는 중세의 획일적인 신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학문이나 예술창작 등을 통한 인간중심의 시대로 돌아가, 그리스로마의 고전주의를 이상향으로 여기고 이를 재생하려는 운동이었다. 다시 말해, 르네상스는 그리스-로마시대의 고전주의를 동경하며 중세의 종교중심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문화현상이다.

 

2) 바로크 문화는 스페인 문명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들 중 하나며, 16세기중엽이후 17세기말엽까지 가톨릭의 반종교개혁의 시기에 유행하였다. 바로크문화는 새로운 종교적 교리와 종교 작품들을 영광스럽게 만들어 주었다. 바로크의 전반적인 특징은 매우 화려하며, 매우 다양한 예술적인 표현을 허용하였다.

 

3) 시몬 볼리바르는 베네수엘라의 독립 운동가이자 군인이다. 호세 데 산마르틴 등과 함께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자로 불린다.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콜롬비아, 에콰도르, 파나마, 베네수엘라를 그란 콜롬비아로 독립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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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를 혐오한다]를 읽고

 

몇 년 전 장철수 감독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세계 영화계를 넘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무도라는 외딴 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화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김복남의 남편은 김복남을 육체적으로 학대하고, 딸을 성폭행한다. 김복남은 하루 종일 노예처럼 일하고, 시동생에게도 성적인 학대를 당한다. 하지만 여성이(할머니들) 대부분인 섬사람 모두 김복남이 처한 상황을 외면한다. 그녀의 친구인 해원도 자신과 딸을 서울로 데려가 달라는 그녀의 부탁을 거절한다. 무도에서 김복남을 도와 줄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녀는 딸을 데리고 섬에서 도망치던 중 딸이 넘어져 죽자, 자신을 학대하고 외면한 모두를 낫으로 베어 죽이는 복수를 감행한다.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의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는 김복남을 떠올리게 했다. 김복남은 저자가 지적하는 여성혐오의 거의 모든 현상들을 경험한 불운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러했다. 이 책은 그녀의 살인이 몇몇 악인에 의해 일어난 특수한 사건이 아니라, 사회의 잘못된 담론과 제도 속에서 우리가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사건이었음을 증명한다. 이제는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를 통해, 왜 김복남이 그러한 핍박받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김복남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기로 하자.

저자는 먼저 여성혐오를 정의한다. 여성혐오를 성별이원제 젠더 속에서 파악하고 이러한 질서 속에서 여성혐오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남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여성화 되는 것, 즉 성적 주체의 위치로부터 전락하는 것이다. 반대로 남성화는 한 여자를 자기 지배하에 두는 것으로써 담보된다고 말한다. 이처럼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성적 주체로 결코 인정하지 않는 여성의 객관화, 타자화, 여성멸시가 여성혐오인 것이다.(p.37) 그렇다면 김복남에 대한 혐오를 넘은 여성들의 방관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것은 김복남을 타자화함으로써 그것을 공유하는 다른 이(힘 있는 남성)들과 동일화하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책 중반부에 파멜라 슐츠의 사례를 소개한다. 성폭력 피해자인 슐츠는 가해자 측의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이기 위해 수감자를 찾는다. 그리고 그녀는, 그들이 저지른 죄는 역겨운 것이지만 그들은 괴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슐츠는 이들 남성 대부분이 자기평가가 낮으며 스스로 학대당한 경험이 있는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는 피해자들의 격분을 사면서까지 수복적 사법의 중요성을 설파한다.(p.99) 수복적 사법을 김복남의 경우에도 사용할 수 있을까? 지속적이고 의도적인 학대를 받은 피해자에게 수복적 사법은 2차 피해가 되지는 않을까? 가해자는 감형받기 위해 참회가 아닌 연기를 하지는 않을까? 기대보다는 우려가 크게 느껴졌다.

저자는 이어서 일본의 다양한 문학 작품을 통해 여성혐오의 현실을 설명하는데, 에토의 작품도 그 중의 하나였다. 저자는 모녀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딸의 태도를 지적한다. 딸은 내 의사를 전혀 반영시킬 수 없는 남성에게 인생의 조타를 맡긴 채 답답한 어머니가 되는 것 말고는 다른 인생이 기다리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체념하기 때문에 늘 불만스럽다는 것이다.(p.151) 극중 김복남의 딸도 늘 어머니 김복남을 별 이유 없이 불만스러워했는데, 이러한 서술로 딸의 행동에 대한 이해가 가능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사회의 모든 딸들-, 여성혐오는 근대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여성의 보편적인 감정이 되고 만다.

저자는 어머니의 질투를 설명하면서 이와쓰키 겐지의 주장을 책에 실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머니는 딸을 질투한다. 그렇기 때문에 딸이 행복해지려 할 때마다 어머니는 그것을 방해한다.(p.167) 어머니의 질투가 일정하게 딸에게 투여되고 있는 것은 수긍하지만, 확증편향에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김복남 역시 무도 탈출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남편의 딸에 대한 성폭행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아빠의 딸에 대한 성폭행이라고 표현했지만, 영화 속에서 딸은 아빠를 유혹하는 것처럼 그려진다. 저자는, 딸은 자신의 유혹에 아버지가 굴복한 그 순간 아버지를 경멸할 충분한 이유를 손에 넣게 되고, 그때 아버지는 단순한 학대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러한 저자의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단순한 근친상간을 넘어 어쩌면 아빠에 대한 딸의 복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반면 저자의 논리가 다소 무리하다고 느낀 부분도 있었다. 먼저 아무리 잔혹한 상상력이라 할지라도 표상의 생산을 단속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부분이었다.(p.95) 이러한 표상이 보상이나 보완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인데, 반대로 표상이 계기나 주입이 될 때도 있기 때문에 나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무차별적인 강간 동영상, 학대 동영상, 아동성폭행 동영상 등의 표상도 단속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어떠한 제한도 없이 생산해내고 소비하는 사회에 남아있을 의식과 담론은 무엇일까? 여자 세계의 암묵적 지식을 이성에게 알리는 행위는 사실 배반 행위이자 반칙 행위라 할 수 있다는 부분도 동의하기 어려웠다.(p.197) 여성이든 남성이든 서로의 지식을 알리고, 소통하고, 이해하고, 잘못된 것은 수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지식 혹은 정보의 공유를 배반 혹은 반칙으로 단정 지어 표현하는 것은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으로 느껴졌다.

저자의 말처럼 이 세상은 남녀 공학 문화로 이루어져 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남학교 문화와 그것에 부수하는 이성애 문화로 이루어져 있다. 남성의 성공을 나타내는 사회적인 지표는 아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라고 하는데, 더 정확하게 말하면 돈이 얼마나 드는가?’이다. 성의 사회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인 섹슈얼리티는 그 자체로서 계급적인 산물이며, 한 계급이 다른 계급으로부터 자신을 차별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다. 근대 사회의 프라이버시는 오직 강자만을 지키는데 이용될 뿐이다. 이러한 수많은 모순과 억압 속에서, 저자는 여성혐오를 극복하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여성이 극복하는 시나리오, 다른 하나는 남성이 극복하는 시나리오다.(p.297) 나와 같은 남성이 여성혐오를 넘어설 방법은 오직 하나 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신체의 타자화를 그만두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신체 및 신체성의 지배자로서의 정신이 주체됨을 그만두는 것이다. 그리고 신체성과 연결되는 성, 임신, 출산, 육아를 여성의 영역으로 여기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신체의 욕망과 그 욕망의 귀결점을 마주 바라보고, 신체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끼며, 신체를 매개로 하는 친교 행위를 깔보아서는 안 된다. 신체는 누구에게나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최초의 타자이다. 자기 신체의 타자성을 받아들인다면 신체를 매개로 하여 연결되는 타자의 존재를 지배나 통제의 대상, 위협이나 공포의 원천으로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타자의 중심에 여성이 있다.

어쩌면 강도만 다를 뿐, 나의 엄마, 누나, 할머니, 여자친구 모두가 김복남일 것이다. 그리고 나, 나의 아빠, 할아버지는 모두 김복남의 남편의 모습을 갖고 있다. 책의 제목처럼 우리는 모두 여성혐오를 혐오해야 한다. 남성혐오를 혐오해야 한다는 책이 나올 때까지. 아니, 그것을 넘어 인간혐오를 혐오한다는 책이 나올 때까지, 그리고 더 이상 이런 혐오에 관한 책들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바다 건너 온 이 빨간 책은 내 얼굴을, 그리고 내 마음을 붉게 물들였다.

 

1) 범죄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대화를 통해 관계의 회복 또는 갱생을 시도하는 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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