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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0.27 누구를 위한 미션인가 - 영화 미션

롤랑 조페의 1986년 영화 [미션]은 스페인제국의 식민지 정책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신대륙 원주민들에 대해서, 스페인제국은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의 식민지 정복을 시도했다. 하나는 정치적 정복이었고, 다른 하나는 정신적 정복이었다. 이 영화는 정신적 정복에 더 집중해서 스페인제국을 그리고 있다.

 

스페인은 알폰소 10(1221-1284)가 나폴리를 정복함으로써 지중해로 진출하게 되었고, 시칠리아, 세르데냐, 동방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게 되었다. 14세기 후반 스페인에서는 재정복전쟁 와중에 까스띠야왕국과 아라곤왕국이 두각을 나타냈으며, 1479년 아라곤왕국의 페르난도2세와 까스띠야왕국의 여왕 이사벨(1451-1504)이 결혼을 함으로써, 스페인의 통일이 이루어졌다.

이 당시 스페인제국은 새로운 부의 원천을 찾고자 하는 현실적 열망이 강했다. 콜럼버스가 스페인제국의 아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을 찾아와 항해를 제안하면서 스페인이 다른 영토를 정복할 비용을 충당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신대륙 발견으로 이어져 멕시코와 페루에서 발견된 은의 유입으로 스페인제국의 막대한 부의 축적으로 이어졌다. 신세계의 은광은 1620년까지 은 생산량이 크게 증대되고 그 수준이 꾸준히 유지되었다. 스페인제국의 은광이 가지는 중요성은 본질적으로 심리적인 것이었다. 끝없이 유입되는 것으로 인식된 새로운 부는 왕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외국인 은행가들을 부추겨 펠리2세로 하여금 엄청난 대규모 사업들을 계획하게 만들었다. 이로서, 스페인제국은 생활이 더욱 풍요로워지고 문화 활동이 활발하였던 황금세기가 도래하게 되었다. 신대륙에서 유입되는 금과 은은 경제적인 부와 동시에 문화예술의 기틀이 되었던 것이다. 이 시대의 뚜렷한 2개의 문화적인 흐름은 르네상스와 바로크이었다.

 

한편 이 당시 가톨릭은 세속화되었고, 동시에 종교개혁으로 인해 그 권위와 실질적인 권세에 있어서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그런 종교개혁에 대한 반동으로 가톨릭교회 내부에서 일어난 교회 쇄신운동이 예수회였다. 종교개혁에 대한 반동이었던 만큼 보수적인 출발점을 가진 예수회였지만 그들의 전교(mission) 방식은 오히려 개혁적이었고, 상당한 융통성을 가진 것들이었다. 그들은 라틴 아메리카의 다른 백인들처럼 원주민들을 사람과 비슷한 짐승으로 보지 않았고, 그들도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수회 신부들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원주민들을 전도할 수 있도록 한 데에는 스페인제국의 이해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라틴 아메리카를 정복하고, 개척한 자들에게 스페인제국은 특별한 혜택을 주고 있었다. 그것은 엔코미엔다라는 것이었다. 엔코미엔다는 16세기 스페인령의 공역제도로서 이것을 받은 정복 이주민들은 인디오 원주민을 기독교도로 개종시키고 보호할 의무를 지님과 동시에 이들에게 강제 노역이나 공물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였다. 그런데 이런 혜택을 받고 있던 정복 이주민들의 힘이 점점 커지자 스페인제국은 이들을 적절히 견제해야 할 필요를 느꼈고, 그때 예수회 신부들의 선교활동을 적절히 이용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예수회 신부들은 잔악한 노예상인들로부터 원주민들을 보호하는 자치구역을 만들었고, 많은 도망 노예들이 이곳으로 탈출해왔다. 이런 예수회의 활동은 정복 이주민들의 반감을 불러왔고, 정복 이주민들은 시시때때로 원주민보호구역을 무력으로 공격하는 일도 잦았다. 실제로 예수회 신부들은 스페인 국왕의 승인 아래 무장을 허가받아 정복 이주민들과 전쟁을 벌인 적도 있었다.

1750년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이의 영토를 교환하는 국경조약이 체결된다. 이에 항의하는 원주민들과 예수회 신부들은 두 차례(1754, 1756)에 걸친 포르투갈과 스페인 군대의 무력 공격에 학살당하고 만다. 그리고 얼마 후에 스페인에서 예수회 추방이 시작되었다.

 

영화 [미션]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영화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신부가 원주민 지역으로 들어가 자신의 가방에서 오보에를 꺼내 연주를 하는 장면이다. 제국의 거대한 탐욕을 넘어, 인류애를 드러내는 종교의 숭고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노예상인 로드리고가, 자신이 학대하고 노예로 사냥했던 원주민들에게 용서와 사랑을 받으며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예수회 신부의 일원이 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이의 조약은 예수회 신부들이 사랑하는 원주민들을 다시 노예로 살아갈 것을 강요하게 만들게 되고, 영화 속 원주민들과 함께했던 예수회 신부들은 모두 전사하고 만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회 신부들을 설득하기 위해 교황청에서 파견되었던 주교는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쓴다. “표면적으로는 신부 몇몇과 과라니족의 멸종으로 끝났습니다만, 죽은 것은 저 자신이고 저들은 영원히 살아남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말입니다.” 살아남은 과라니족 아이들이 줄 끊어진 바이올린을 들고 더 깊은 정글로 숨어드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요한복음 1장의 말이 자막으로 올라간다. ‘빛이 어둠을 비춰도, 어둠이 이를 깨닫지 못하더라.’

 

영화를 보며 감동적이지만 한편으로 불편했던 것은, 영화가 지나치게 서구 중심적이고 기독교 중심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영화 속 스페인제국 침략에서 과라니족을 비롯한 원주민들은 또다시 타자화 되고 있다. 영화 속 과라니족은 지나치게 수동적이다. 제국과의 전투에서 과라니족이 아닌 예수회 신부들이 군을 지휘하고, 예수회 신부들마저 원주민들과의 융화 속에서 원주민에 대한 계몽의식과 선각자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원주민들의 피를 먹고 자란 스페인제국이 신에게 벌을 받았는지, 이후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스페인은 애초에 사회경제적 기반이 근대의 제국들과는 달랐다. 산업혁명을 통한 안정적인 재정력을 통해 제국을 확장시켜 나갔던 근대제국들과는 달리 스페인의 산업발달 수준은 후진적이고 과도기적 상황이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영토 확장을 했고, 내수 경제에 투자 되었을지도 모르는 이윤은 사실상 대부분 군비로 지출되었다.

전쟁은 사그라지지 않고 17세기까지 장기적으로 이어지는 국가 파산의 사슬을 촉발시켰다. 심지어 펠리페 2세 치하의 카스티야 재무국은 카를 5세가 야기 시킨 부채 부담에서 헤어날 수 없어서 매 20년마다 파산을 선고했다 후반기로 갈수록 제국의 이상보다는 오히려 경제적 현실이 스페인 정부의 정책 입안자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17세기 후반에 이르러 스페인 제국은 백성들과 관료들에게 평화의 요구를 받았다. 앞서 언급한 재정적 원인뿐만 아니라 스페인은 내부 행정적으로도 고충을 앓고 있었다. 아메리카 대륙으로 식민지 확장을 하면서 본국뿐만 아니라 식민지에서도 필요 이상의 관직들이 생겨났다. 세기를 거듭할수록 본국에서는 관료들의 통제력을 상실하였고, 식민지관료들은 중요한 지배층이 되어 본국으로부터 독립성이 높아졌다. 본국의 영향력이 적어지면서 원주민의 반란도 많아졌고, 18세기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시몬 볼리바르로부터 해방의 흐름이 불기도 했다.

다른 유럽 국가들에게도 끊임없이 위협을 받으며 스페인 제국은 한 세기의 마지막 4분의 3을 전쟁으로 소모했다. 스페인은 평화가 간절했지만, 평화는 스페인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다. 이런 총체적 난국 앞에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에 패하고 말았다. 그렇게 스페인 제국은 찬란하게 빛나다 지고 말았다.

 

1) 르네상스는 중세의 획일적인 신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학문이나 예술창작 등을 통한 인간중심의 시대로 돌아가, 그리스로마의 고전주의를 이상향으로 여기고 이를 재생하려는 운동이었다. 다시 말해, 르네상스는 그리스-로마시대의 고전주의를 동경하며 중세의 종교중심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문화현상이다.

 

2) 바로크 문화는 스페인 문명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들 중 하나며, 16세기중엽이후 17세기말엽까지 가톨릭의 반종교개혁의 시기에 유행하였다. 바로크문화는 새로운 종교적 교리와 종교 작품들을 영광스럽게 만들어 주었다. 바로크의 전반적인 특징은 매우 화려하며, 매우 다양한 예술적인 표현을 허용하였다.

 

3) 시몬 볼리바르는 베네수엘라의 독립 운동가이자 군인이다. 호세 데 산마르틴 등과 함께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자로 불린다.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콜롬비아, 에콰도르, 파나마, 베네수엘라를 그란 콜롬비아로 독립시켰다.

 

 

Posted by 이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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