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그 때 생각했던 멋은 철없이 거들먹거리고 우쭐거리는 게 아니었을까? 바지통을 줄인 짱구를 보며 나도 오래 전 내 추억 속으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 바람은 새롭게 고등학교로 입학하면서 각 중학교를 다니던 친구들이 한 고등학교로 모이며 시작된다. 한반에 뒤섞이면서 치열한 각축전속에 그들은 자연스럽게 서열이 매겨진다. 미묘한 알력이 펼쳐지는 영화 바람의 구조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처럼 지나치게 정치적이지도, ‘말죽거리 잔혹사처럼 우울하지 않고 그저 유쾌하고 흥미롭게만 그려졌다. 기억이 달콤한 추억으로 바뀌는 것은 시간의 힘일까? 1인칭주인공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짱구가 그 각축장속에서의 승자이기 때문일까?

나쁜 친구들로 오인 받으며 껌이나 쩍쩍 씹고 다니는 그 친구들에게 폼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 폼에는 인간적인 냄새가 난다. 마치 짱구라는 이름처럼. 극 중 인물의 이름 하나가 얼마나 많은 극적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도 작품을 보는 소소한 재미중의 하나였다. 엉뚱하고 고집스럽지만 순수한 주인공의 이름 못지않게 영화 작명도 기막히다. 영화의 제목 바람은 중의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짱구가 원하는 것, 둘은 짱구가 느끼는 것. 짱구의 고등학교 3년은 바람처럼 흘러갔고, 짱구는 빨리 어른이 되기를 바랐으니까.

하지만 짱구와 그 패거리의 캐릭터 면에서의 매력이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몇몇 전문가들이 학원 액션물 품행제로’, ‘말죽거리 잔혹사’, ‘싸움의 기술등을 철학이 없는 폭력 미화 작품으로 비판했던 것에 비추어 볼 때, 그 후 나온 이 영화가 얼마만큼 충무로 액션 영화에 발전을 가져 왔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은 학원 액션물뿐만이 아니라 복합장르 영화로서 얼마만큼의 성과를 얻었다. 얼마 전에 한국형 하이틴 영화 써니가 돌풍을 일으켰다. 영화의 주 향유 층이 고학력 여성이었던 시대에서 전 국민으로 바뀐 오늘날, 우리 영화계에 하이틴 영화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바람은 남자들의 하이틴 영화, 더 나아가 교복을 입고 명찰을 달고 다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모든 이들의 하이틴 영화다. 그때를 그리워하며 오늘날 한반도를 밝히고 있는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여, 파이팅!

바람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그래서 성장영화이기도 한 이 작품은 글러브’, ‘여행자등과 비교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 작품들과 다르게 메시지 전달보다는 작품 내적 재미를 추구하는 바람은 그래서 상영시간이 빠르게 느껴진다. 바람 한 줄기 휙 지나간 것처럼.

바람처럼 흘러간 짱구를 연기한 정우의 놀라운 흡입력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실화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한 그는 그저 그런 저예산 독립영화로 평가받을 수도 있었던 이 작품을 관객평점 9점 이상의 성적을 올리며 충무로의 미래를 밝혔다. ‘워낭소리’,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불청객들이 나올 수 있는 기반을 닦은 작품이라고 말하기에 무리가 없다.

정우, 이성한의 한국형 액션 라인은 류승완, 류승범 형제의 액션 라인에 필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호평 전에 이성한 감독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 관객들이 단순히 재미만을 위해 극장을 찾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비슷한 스타일의 감독인 류승완, 양익준이 보여주는 삶의 애환과 서민에 대한 애정, 사회 참여적 성향 등의 철학적 깊이를 이성한도 그만의 스타일로 갖게 되길 희망한다.

올해 가을 개봉 예정인 그의 차기작 히트에서 그는 정우와 어떤 이야기를 보여주며 우리에게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할지 기대된다. 왜냐고? 나는 개인적으로 사색의 숲에 부는 가을바람을 좋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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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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