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시간 사라질 시간

-최미아의 구조장비(대안공간 눈) 리뷰

 

1

시간은 상대적이다. 지루한 수학 강의를 듣는 학생이 체감하는 시간과, 흥미진진한 SF영화를 보는 관객이 체감하는 시간의 속도는 차이가 크다. 최미아의 구조장비에 입장했을 때, 필자의 시간은 비약적으로 느려졌다. 시간을 잃고 망연히 우주를 떠도는 사람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시간을 낙후하게 만드는 전시에 힘을 불어넣어 줄 어떤 장비도 내겐 없었다.

416. 누군가는 세련된 백을 선물 받아 기뻤고, 누군가는 급하게 삼겹살을 먹다가 체했고, 누군가는 이사를 가서 새로운 희망에 부풀었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모든 감정을 뒤로 한 채, 인생의 시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날 시간이 멈춘 아이들을 구해줄 장비는 너무 늦게 나타났다.

시간이 사라진 그들의 부모들이 거리로 나섰다. 부모들의 시간도 자녀들처럼 그날에 멈춰있다. 푸르게 자라던 나무는 검게 물들었고, 부모는 멍한 새처럼 죽은 나무를 바라볼 수밖에 없을 뿐이다.(black still life in, 2014) 왜 아이들은 죽어야만 했을까? 아이들을 구하려던 장비는 모두 사용할 수 없게 잘려 있었고(the true rescue equipment, 2009), 그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었다.

미국이 상징하는 자본주의는(pax americana) 우리가 효율, 이윤, 독점을 추구하도록 독려했고, 배려, 나눔, 안전 등의 가치는 부차적인 것이 되었다. 우리의 심장은 미국적 자본주의로 새빨갛게 달아올랐고(pax americana), 이런 세태의 옳고 그름에 대한 논의는 학계로 한정돼 진행될 뿐이었다. 오히려 사건이 터지지 않고 시간이 평화롭게 흘렀다면, 더 이상하게 생각됐을 정도이다. 19941021일 잘린 다리 앞에서, 1995629일 무너진 건물 앞에서, 우리는 시간이 멈춘 이들을 처연히 목도해야 했다. 그로부터 스무 해가 지난 2014416일 진도의 고요했던 항구 에서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달라진 것은, 없다. 결국 스스로 각자도생하여 탈출하는 것 외에,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는 별다른 방법은 없지 않겠는가.(나에게 보내는 선물)

 

거울을 마주한다. 나르시스가 본 아름다운 자화상도, 동주가 만난 밉지만 그리운 자화상도, 미당의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라고 말하는 추억을 덧 씹는 자화상도 아닌, 삽 모양의 거울에 부끄러운 내가 있다.

너는 뭘 했는데? 커피나 마시며 뉴스를 즐기던 네가, 무슨 자격으로 사회를 비판하는데? 부채감을 떨어뜨리려 촛불을 들었고, 이제는 그것마저 시들해지니 옷깃만 여민 채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는 너는 뭐가 그렇게 다른데?”

손잡이만 남은 각양각색의 삽들이 대안공간에 피었다. 싸늘한 가을을 맞은 이 삽들은 나와 당신이다. 화사한 태로 도시를 수놓는 손잡이는, 정작 사고 현장의 무거운 돌 하나도 들어내지 못하는 쭉정이일 뿐. 당신이 지금처럼 현실을 외면하면, 세상은 핏빛의 쭉정이들만 가득할 것이다.(빨간 안경, 2013)

 

2

예술의 사회적 역할, 참여, 저항 등의 대한 담론과 논쟁들이 촌스러워진 시대이다. 소위 소재’, 의제로 쉽게 창작하고 기획했다가는, 관객과 평단에게 문제를 그 정도밖에 표현하지 못했냐며 씹히기 십상이다. 이번 전시는 대안공간, ‘구조장비 등 현재 우리 사회의 주요 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타이틀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대안공간 눈의 전시가, 주요 미술관의 전시와 어떤 차별성을 갖고 있는지 쉽게 판단할 수 없었다. 지방에, 골목에, 무료로 전시된다고 대안이라는 단어를 붙인 걸까? 캔버스 바깥의 예술이, 캔버스 안의 예술을 살린다. 관객은 전시도 보지만, 미술관도 본다. 골목을 걷다가 고개를 쭈뼛거리며 들른 관객이, 대안공간 눈이 추구하는 주안점을 쉽게 느낄 수 있는 공간 운영의 묘가 있다면, 최미아의 구조장비들을 더욱 또렷하고 실감나게 볼 수 있지 않았을까.

 

1-1

전시를 관람하고 나오며 원래의 시간을 찾은 필자가 늦은 밤 모니터 앞에 앉았다. 작가의 말처럼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구조장비는 무엇일지 안경을 벗고(빨간 안경, 2013), 생각해본다. 평안과 상상의 늪에 빠져 결코 구조되지 못할, 뒤틀리고 발칙한 시간이란 존재할까. 그런 시간은 황망해서 사라진 시간이 아닌, 즐거워서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시간이겠지. 먼 후일에 구조장비를 타고 그 시간, 오고야 말 것이다. 대안공간에서, 제주를 향하는 바닷길에서, 부모의 지친 발이 디디고 선 광장에서.

 

Posted by 이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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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영화 비평 2020. 10. 26. 15:11

자본주의(Capitalism):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이 지배하는 경제체제.

 

칸영화제 황금곰상의 주인공이자, 2007식코로 전국적인 의료보험 체계가 없는 미국 사회의 병폐를 혹독하게 꼬집었던 마이클 무어는 이번에는 좀 더 영역을 근본적으로 확대해서,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영화 속에서 시작한다.

빵과 서커스로 우민화 정책을 국시로 삼은 고대 로마시대를 다룬 개론을 통해 영화자본주의는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전 월가에서 주도한 파생상품에 의한 재테크 실패와 서브 프라임 위기로, 수십 년 동안 살아온 보금자리를 빼앗기고 은행과 각종 대출업체에게 길거리로 내몰리는 미국 보통 사람들의 현 모습을 마이클 무어는 카메라에 담담히 때로는 서럽게 담아낸다.

 

영화 속에서 타인의 불행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라는 듯, 월가는 은행에 저당 혹은 압류된 집들을 찾아내 헐값에 사들인 후에 비싸게 되파는 비윤리적인 짓을 서슴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이러한 행태가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의 법적으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 그게 바로 물신만능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이윤추구라는 규제되지 않는 괴물의 본질인 것일까?

 

자유기업, 경쟁 그리고 이윤추구라는 자본주의 가치로 무장한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래에 자신의 경쟁자가 되는 독일과 일본이 패전의 폐허를 극복하는 동안 세계시장에서 역사상 유례없는 번영을 구가한다. 이어서 미국은 레이건 집권 이후 30년 동안, 회사의 고위경영진은 보통 노동자들에 비해 엄청난 차이의 고 급여를 받는 차별적인 임금체계를 강화시키고, 빈부간의 격차는 측정불가 수준으로 치닫는다. 미국을 대표하는 GM 같은 회사들이 잇달아 부실경영으로 도산하면서, 그에 따른 대량해고로 일자리를 잃은 미국의 수백만 가정들은 사회에서 표류하기도 한다. 철저한 빈익빈부익부사회의 도래 인 것이다.

 

또한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 체제는 국가의 기능을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민간 기업에 위탁하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는 실례로 펜실베이니아의 사례를 든다. 펜실베니아에서는 십대 청소년들이 쇼핑몰에서 싸움을 하고, 미니홈피에 학교 관리자를 욕했다는 단순한 이유로 소년원에 보내진다. 이 소년원은 800만 달러를 투자한 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곳으로, 전액 시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인데 투자비를 상회하는 막대한 이익을 내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행태를 보여야 하는 것이다. 소년원 내에서도 이들은 청소년들의 교화보다는 이윤추구를 목표로 한다. 더불어 항공기를 조종하는 조종사들이 박봉과 빡빡한 일정에 시달리기 때문에 승객들이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도 마이클 무어는 지적한다.

 

월마트나 미국 내 굴지의 은행들은 그들의 피고용인에 대한 생명보험을 들고, 수혜자를 기업으로 설정해서 그들이 죽었을 때 막대한 이익을 챙기기도 한다. 이런 보험을 무섭게도 죽은 일꾼 보험이라고 하는데, 인간을 오로지 이윤추구의 수단으로 보는 비인간적인 자본주의의 일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월가의 경영 천재들이 개발해낸 금융파생 상품에 대한 설명을 들을 적에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상품에 대해서도 제대로 설명 하지 못하는 어이없는 상황도 관객들은 마주하게 된다. 이처럼 거의 사기 수준인 대출업계의 농간에 넘어간 미국 중산계급 노동자들이 집을 잃고 길거리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골드만삭스와 앨런 그린스펀으로 대변되는 끝을 모르는 탐욕의 주범 월가는, 세계금융위기 속에서 시민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7,000억 달러에 달하는 공적 자금을 받는데 성공한다. 아무런 규제도 없이 그렇게 공적 자금을 통해 극적으로 부활한 금융기관은 어이없게도 자신들만의 보너스 잔치로 국민의 공분을 사는 파렴치한 행태까지 보인다.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도 골드만삭스가 주도한 금융쿠데타에 대해, 미국의 일단의 양심 있는 의원들이 의회에서 소신 발언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뉴스 필름과 인터뷰를 통해 월가의 추악성을 밝힌 마이클 무어는 현금 트럭을 몰고 의회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은 금융기관을 돌며 공적자금의 회수를 시도해 보지만, 건물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냉대를 받고 쫓겨난다.

 

하지만, 2008114일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미국사회는 극적인 반전이 이뤄지기 시작한다. 지역 보안관은 더 이상, 은행의 가혹한 압류정책을 시행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하고, 국회의원은 설사 자신의 집이 압류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버티고 저항할 것을 주장한다. 자각한 시민들의 도움으로 빼앗긴 집에 들어가 다시 살 기회를 잡는 모습을 영화는 보여주기도 한다. 시카고의 어느 공장에서는 경영부실로 대량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이 저항과 연대를 통해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기도 한다.

 

영화를 통해서, 신자유주의자들이 복음처럼 떠들어 대는 자본주의가 과연 민주주의 대의에 적합한가에 대해, 나는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마이클 무어가 만난 가톨릭 사제들은 자본주의의 본질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반한다는 말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한다. 자본주의는 공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정반대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2006년 시티그룹이 작성한 비밀문서에 따르면, 미국은 더 이상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1%의 부자들이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금권주의 국가라고 선언한다. 상위 1%의 부자들이 하위 95% 계층의 부와 비슷한 상황은 빈부의 격차를 벌이고, 이런 상황은 영속되리라는 전망도 함께 내놓았다. 그들은 하위 계층의 부의 공정한 분배요구와 민주주의의 근간인 일인일표제를 금권주의 유지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거의 모든 사회의 부를 쥐고 있는 사람이나, 급여가 빤한 월급쟁이나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하는 이러한 보편적 평등이 불만일 게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가진 자본을 이용해서, 규제를 철폐하고 유리한 법률을 만드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래도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의 친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제 영화에서 나와, 현재의 미국을 바라보자. 오바마 집권이후 미국역시, 경제상황은 암울하다. 부시 재임시절 이라크 전 및 각종 전쟁에 쏟은 국방비와 지속적인 세금 감축으로 이미 국가 재정은 엉망이었던 것이다. 실업률은 그 증가속도가 감소했다고는 해도 지속적으로 오르는 추세에 있고, 영화에서 보듯이 주택압류를 당하는 서민들도 아직 많다.

 

역사의 제국들과 현재의 미국을 비교해볼 필요도 있다. 과거 역사속의 제국들 역시 돈이 있는 곳에 정치가 있었고, 정치가 있는 곳에 늘 돈이 있었다. 일례로, 유럽에서는 십자군 원정 때 작위를 가진 귀족들이 원정으로 목숨을 잃거나 재산을 잃었을 때 주로 무역상들은 새로운 교역로 확보로 이득을 보게 되었고, 전쟁자금이 필요했던 왕실에서는 이들의 도움을 받고 그들에게 작위를 내려 신흥 귀족으로 만들었다. 문제작 쑹홍빙의 화폐전쟁을 참고한다면, 20세기 두 번의 세계전쟁에서도 군비를 댄 금융가들이 이득을 보았으며, 전후 정치에까지도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자본주의를 유사한 한국의 자본주의와 비교해 볼 필요도 있다. 한국은 산업화시대 그리고 지식정보화시대를 거치면서 우리 모두가 잘 살아보세, 선진국 진입이라는 자신감과 열정에 불타올랐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어떠한가. 대졸 젊은이로부터 은퇴하는 베이비부머 세대까지 사회전반에 걸쳐 국민 모두가 경제적 위기를 겪고 있다. 미국 못지않게 국민경제의 기반을 흔드는 양극화가 국가사회 전반에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미국과 한국 모두 현 상태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 아닐까한다.

 

이러한 자본주의는 결코 대안이 없는 것일까? 감독은 그 대안으로 협동조합 형식의 기업 운영형태를 제안한다. 협동조합은 농산품의 가공·판매, 다양한 장비와 원자재의 구매, ·소매업, 발전소, 은행업, 주택건설업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운영되어오고 있다. 미국에서 coops로 약칭되는 현대적인 소비자 협동조합은 일련의 조직규범 및 업무원칙을 세우고, 이를 광범위한 분야에 적용한다. 주요원칙으로는 개방적인 회원제도, 민주적 관리, 종교적·정치적 불평등의 제거, 공정한 시장가격의 유지, 교육을 위한 수익금의 적립 등이 있다.

이러한 협동조합 모델은 감독이 비판한 미국의 현재에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배층과 피지배층 간의 적대감을 줄이고, 해고를 줄이고, 자본주의보다 민주주의가 더 큰 미국을 만드는 데 큰 힘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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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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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이전의 쿠바

1898년 스페인에 점령돼있던 쿠바는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에 의해 독립은 인정됐지만 또 다른 종속을 당한다. 1930년대 선린정책을 주장한 루즈벨트에 의해 미국의 쿠바에 대한 종속 정책은 누그러든다. 이 시기 쿠바는 독재자 마차도의 실각이후 과도정부가 수립됐으나 바티스타 등 하사관이 주축이 된 쿠데타에 의해 다시 새로운 정부가 수립된다. 바티스타는 서민적인 정책을 펼쳐 자신의 독재기반을 넓혀갔다. 그의 집권 중 쿠바는 정치 경제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면에는 개인적인 치부와 부패가 심했으며, 쿠바는 미국의 경제적 식민지로 전락해갔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장기간 휴식을 취한 바티스타는 다시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았다. 그는 언론을 통제하고 대학을 폐쇄했으며 반체제 인사들을 투옥했다. 그리고 의회를 해산하고 계엄령을 선포하며 장기독재를 위한 권력 기반을 확보한다.

 

쿠바혁명

반미학생운동의 대부였던 카스트로는 폭력에 의한 혁명을 꿈꾸게 된다. 그는 몬카다 병영의 습격으로 대정부 무력투쟁을 시작하지만 이는 곧 실패한다. 그는 석방이 됐으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멕시코로 망명한다. 그는 체게바라를 만나 그린마호를 타고 쿠바로 나아가다 배가 암초에 부딪혀 좌초된다. 그 후 카스트로는 미국의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바티스타를 비난했고, 게릴라 군을 강화시켰다. 다시 바티스타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을 펼친 그는 승리했고, 수도 아바나에 입성하여 새로운 혁명 정부를 수립한다.

 

혁명 이후의 쿠바

카스트로는 석유법과 대기업 국유화법을 제정하여, 1960년 쿠바에 있던 미국인 소유 기업과 은행들을 모두 국유화했다. 미국은 경제제재를 가했지만, 러시아에 지원을 받은 쿠바는 사회주의화를 가속한다. 대농장에 토지를 소유하여 각 농가에 분배했고, 나머지 농민들은 농지개혁청이 관리하는 협동농장에서 농사를 짓게 했다.

미국은 바티스타의 잔존세력과 용병의 연합군을 쿠바에 침투시키지만 패배했고, 미국 내 쿠바자산 동결로 응수한다. 반면에 쿠바는 제당산업의 근대화에 주력했고, 지역과 주 단위의 선거를 실시하여 대의체제를 확립했다.

현재 쿠바의 전 인민이 12년간 무상 의무교육을 받고 있으며, 무상 의료 서비스 혜택을 누리고 있다. 학생이 10명 이하인 학교도 2,000여개에 달한다. 2008년 은퇴를 선언한 카스트로에 이어 그의 동생 라울 카스트로가 권자에 앉아있다.

 

쿠바의 한계

국가의 통제 속에 이루어진 사회주의 혁명의 과정은 다양한 이견들과 소수의 목소리들을 모두 포용하지 못했다. 양심수가 500명에 이르는 등 쿠바 정부는 지난 30년 동안 인권 침해에 대해 비판받았다. 쿠바 정부는 이론적으로는 계급 특권을 부정하는 입장이지만, 공산당원 또는 정부에 권력을 가진 자에 대한 우대가 존재한다. 교통, 직업, 주거, 대학 교육 그리고 보다 우수한 보건 혜택을 받는 것은 정부나 또는 공산당 내에서 신분을 가져야 가능하다. 보통 인민들은 외국의 초청이 없는 한 해외로 출국할 수도 없다. 다양한 인종으로 이루어진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기득권은 대부분 백인이나 메스티소가 소유하고 있다.

카스트로는 영화와 출판 산업 등 문화산업 분야도 장악했다. 이 때 쿠바인민들의 전통적인 축제마저 사라졌다. 쿠바의 문화예술인에게 혁명 옹호 이외의 문화 활동은 허용되지 않은 것이다. 한 때는 종교 역시 탄압의 대상이었다.

쿠바는 북한과 비슷한 검열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쿠바 정부는 인터넷을 21세기의 큰 질병이라고 부른다. 컴퓨터 소유가 금지되어 컴퓨터 보유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 인터넷을 이용할 권리는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허가되며, 이들도 감시받는다. 불법적인 인터넷 연결은 징역 5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

미국과의 관계악화 역시 쿠바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멕시코와 함께 라틴아메리카에서 왕따를 당하기도 했던 쿠바는, 소련의 붕괴와 미국의 패권이 강해지면서 경제봉쇄가 모든 나라로 확산되기에 이른다. 쿠바 내의 반군의 활동은 지속됐고, 극심한 경제난을 겪는다. 쿠바 정부는 주택, 선박, 농장 등에 세금을 부과했고, 부분적으로 자본주의 생산방식을 도입하지만 인민에게 부담만 안겨주었을 뿐 경제난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이에 카스트로는 인민의 대규모 국외로의 탈출을 허용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들을 인간쓰레기라고 매도했지만, 그들은 단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사회주의 체제하에서는 더는 삶을 지탱할 수 없다고 결심한 평범한 시민들일 뿐이었다. 무상 의료 서비스로 인해 의사들은 응급 환자에게 촌지를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암시장이 활발해지는 등의 도덕불감증 또한 팽배해졌다.

 

반쪽짜리 사회주의 혹은 실패한 사회주의

19945월 쿠바의 입법부가 가장 획기적인 개혁안을 통과시킨 이래 중요한 내용을 요약하면 세금부과, 적자를 내는 국영기업에 대한 지원 금지, 공적으로 제공되는 물품 및 서비스의 가격인상, 저축 장려, 외환순환의 통제(즉 페소화의 태환화 유도) 등이다. IMF가 권고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연상시키는 이러한 개혁안은 쿠바 사회내부의 계층 및 계급 간의 괴리를 확대하는 동시에 사회 중간층 이하의 삶을 매우 어렵게 만들 것임이 틀림없다. 이러한 정책이 비사회주의적 성격을 갖고 있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결국 쿠바 정부는 자본주의적인 것을 더 많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재정지출의 축소, 전 국민의 달러소지 자유화 등의 신경제정책을 추진한다. 라울 카스트로 역시 규제 완화, 배급 및 급여제도 개선을 시행한다. 사설 면허 택시의 허가, 임대 형식이기는 하지만 개인의 농지 소유 역시 허용된다. 뿐만 아니라 직원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이 원칙적으로 19.5달러의 월급을 받는다는 급여 상한 제한을 철폐하고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다. 사회주의적 경제제도를 보호하기 위해 시행했던 이중화폐제도 역시 단일화폐로 변화했고, 배급카드 제도마저 단계적으로 폐지되고 있다. 국영기업에 대한 자율권도 부여됐다. 쿠바가 반쪽주의 사회주의 혹은 실패한 사회주의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굿바이 레닌. 동독에서도, 쿠바에서도.

레닌은 공산주의 그 자체로 표현되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굿바이 레닌이라는 말을 풀어보면 공산주의의 몰락을 의미한다. 신념과 이상이 사라진 한바탕 꿈같은 20세기의 일이었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시작은 언제나 창대했지만 그 뒤에는 이 존재했다. 모든 이데올로기가 가진 꿈과 사랑은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하는 불완전한 것이다. 인간은 이념을 떠나보낼 때 슬픔과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그것의 끝이 존재한다고 해서 우리는 그것을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 끝에는 슬픔을 녹여줄 아름다운 불꽃과 같은 새로운 이상의 씨앗이 있기 때문이다.

동독인들은 통일된 독일에서 어떤 감정이었을까? 자본주의를 향해 나아가는 쿠바의 국민들은 현재 어떤 마음일까?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그들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실직, 상대적 빈곤감, 패배감과 굴욕감 같은 것들이었다. 동독의 많은 사람들은 어쩌면 통일되기 전의 동독 시절을 그리워 할 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쿠바 역시 훗날 가난했지만, 평등했던 20세기를 추억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영화는 순간순간 통일이 되었지만, 아직 갈등이 봉합되지 않는 서독과 동독의 상황을 보여주었다.

알렉스와 그의 어머니와, 지금도 무너져 내린 레닌이 그리운 벗들아. 슬퍼하지 말지어다. 사회주의는 몰락했지만, 인간 해방의 역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니까. 자본주의의 풍요와 빈곤, 차별과 격차 역시 언젠가는 사회주의의 길을 밟을 것이다. 그렇게 조용히 혁명은 진행된다. , 자동차, 가방, 안경, 사회를 보는 시선까지, 세상에는 바꿔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

 

참고문헌 사이트

쿠바 사회주의의 위기와 앞날, 권혁범, 사회과학원, 사상22, 1994.9, 155-189

쿠바혁명과 그 변천에 관한 연구, 최정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1990

라틴아메리카 리더스다이제스트

위키피디아

 

쿠바 사회주의의 위기와 앞날, 권혁범, 사회과학원, 사상22, 1994.9, p.11

Posted by 이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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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

하버마스는 1929년 출생하여 나치시대에 소년기를 보냄. 그는 1954셸링 철학의 절대개념과 역사개념의 분열이라는 주제의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음. 1959년에는 공론장의 구조 변동을 교수 자격 논문으로 출간함. 1963년에는 이론과 실천을 출간함. 1965년에는 프랑크프루트 대학의 정교수로 취임함

 

구성

이 책은 3부로 구성돼 있음. 1부의 핵심은 사회과학적 위기 개념을 체계 위기와 사회 위기로 나누어 분석한 것임. 하버마스의 이론 구성에 의하면 국가와 시장경제의 관계는 체계 통합 또는 체계 위기의 개념으로 잘 포착할 수 있음. 축적 과정의 난제들을 예견, 측정하여 이에 대응해가는 방식은 경기순환과 같은 체계 통합의 관점을 전제한다는 것임

2부에서 하버마스는 현대 자본주의가 부딪치고 있는 위기의 경향을 분석하고 위기의 이전 패턴을 검토함. 선택성의 이면에서 경제 위기의 피해를 받는 서민들의 복지가 차별대우를 받게 된다면, 이런 국가의 경제 위기 개입 방식이 과연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한 것인가의 근본적인 의문을 만들어낼 수 있음. 정당성의 위기는 이런 맥락에서 제기되는 쟁점임

3부에서 하버마스는 국가의 복지 기능에서 발아된 탈상품화의 인간관계로부터 시작하여 사회 구성원이 강제 없이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 공공선을 응시함. 이를 통해 자본주의적 사회관계가 아닌 보편적인 사회관계를 확립할 수 있는가를 물음

선택성의 원칙

첫째는 배제의 원칙으로 자본축적은 자유로운 기업에 의하여 이루어짐. 기업이 가지고 있는 특권은 기업 활동에서 이윤이 창출되지 않는다면 생산을 중지할 수 있음. 국가는 축적에 반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생산을 하도록 기업을 밀어 붙일 수 없으며, 또 반대로 이들이 축적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생산을 중지할 수도 없음

둘째는 관리의 원칙으로 국가는 자본축적의 조건을 창조하고 유지해야 할 권한과 의무를 가지고 있음

셋째는 의존의 원칙으로 국가 활동의 물적 기반은 일차적으로 축적 과정이 여하히 지속하느냐에 달려있음. 자본축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국가권력을 포함한 모든 것이 해체되는 경향이 나타남. 경제가 잘 유지되어야 국가 예산이 세금으로 충당되기 때문임. 따라서 국가는 자신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서라도 자본축적과 조화되어야 함. 이런 축적 기능에 대한 국가 의존성은 국가 정책에 있어서 선택성의 원리로 작용함

넷째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에 작용하는 정당성의 원리로 요약됨. 정당성은 특정 계급의 이익이나 시장경제의 필요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시민이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 또는 일반화가 가능한 규범으로부터 나옴

 

위기 관리의 위기본격화가 정당성 위기로 발전할 가능성

첫째, 관료행정의 합리성에 대한 대중의 비판, 둘째, 너무 가시화된 국가의 계급적 성격의 노출에 따른 정당성의 추락, 셋째, 국민 다수가 귀중하게 생각하는 공동체적 가치 등이 심각히 훼손되고 있다는 판단과 여기서 나오는 분노가 대중 시위나 사회 운동으로 발전하면 정당성은 도전에 직면함

 

양면 관계의 균형

하버마스의 진단은 결국 후기 자본주의는 복지국가 체제를 통하여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이 균형을 이루는 지점에 도달하였다는 것으로 요약됨. 국가 기구 안에 시장 제도에 근거한 경제 권력과 시민 사회에 근거한 사회권력이 국가 안의 구조적 선택성을 경유하여 내화됨으로써 긴장을 수반하는 대칭적인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진단을 제시함. 동시에 그는 경제 위기와 같은 상황이 오면 두 영역 사이의 긴장과 균열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고 가정함. 성공적 위기 관리를 위해 국가는 시장의 요구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며 시민 사회가 주장하는 복지, 교육, 육아, 건강 등에 대한 재정 지원은 줄이는 경로를 밟기 때문임

 

세계정부 없는 세계조직의 정당성 문제

하버마스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임. 하나는 범세계적 차원에서 세계시장에 근거한 자본권력에 맞서 일종의 정치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초국가적 협력 모델을 추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 평화와 인권의 증진 같은 공통의 목표를 향하여 국제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새로운 장, 국민국가 상위의 세계적 정치조직의 운영에 관한 것임

하버마스에 의하면 초국가적 정의는 세계시민에게 정치적, 사회적 기본권과 함께 그 권리의 공정한 향유를 보장하게 될 때, 비로소 정당성을 얻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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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벤클로워드

1932년 캐나다에서 출생하였으나 현재까지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음. 그녀는 시카고 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후 청소년을 위한 동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함. 이 기관은 최대, 최초의 빈곤 퇴치 기관으로 뉴욕시 빈민가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많은 실험적인 프로그램을 통하여 빈곤, 범죄,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는 기관임.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녀는 1965년에 이 책의 공저자인 클로워드와 함께 빈민동원,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논문을 발표함. 이 논문을 계기로 그녀는 클로워드와 결혼하고, 클로워드가 2001년 죽기 전까지 거의 모든 일을 같이 함

그녀는 사회활동가의 역할뿐만 아니라, 콜럼비아 대학의 사회복지대학원, 보스톤 대학의 정치학과를 거쳐, 현재 뉴욕시립대 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음. 대표작으로는 빈민 운동”, “신계급전쟁”, “미국 사회계약의 파기”, “권위에의 도전등이 있음

클로워드는 1926년 뉴욕에서 출생하여, 1958년 콜럼비아 대학 사회복지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함. 이후 1954년부터 2001년 작고할 때까지 콜럼비아 대학의 교수로 재직함

 

구성

이 책은 전체 11장으로 구성돼 있음. 먼저 1장에서는 이 책의 핵심적인 주제, 즉 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국가가 빈민을 통제해야만 하는가를 이론적으로 개관함. 이어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근대적 의미에서의 복지국가가 등장하기 이전 유럽 국가에서 수행한 빈민 통제의 역사적인 사례를 소개함. 2장부터는 미국의 사례를 시기별로 세부적으로 분석함. 2장과 3장으로 구성된 1부의 빈민 구제와 대공황에서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가장 큰 규모로 이루어진 국가에 의한 빈민 구제 활동, 대표적으로 뉴딜 정책과 오늘날 미국 사회복지 제도의 뿌리가 된 사회보장법의 성격을 분석함. 4장과 5장으로 구성된 2부의 빈민 구제와 경제 안정의 시기 : 1940-1960’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1960년대 초까지의 경제적 호황 시기에 빈민 구제의 성격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보여줌. 6장부터 10장까지 구성된 3부의 빈민 구제와 도시 위기에서는 1960년대에 이른바 빈곤의 재발견 이후 빈곤과의 전쟁에서 빈민 구제가 크게 확대되는 현상을 분석함. 11장은 에필로그임

 

자본주의 사회와 빈민 통제

저자들은 빈민 구제를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경제 제도의 부속물로 보고, 그것은 주 기능은 빈민을 통제하는 데 있다고 봄. 빈민 통제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방법에 의하여 이루어짐. 하나는 대규모의 실업 등으로 사회 혼란이 야기도리 때, 실업자나 빈민을 통제하여 기존의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빈민 구제 프로그램들을 확대함

국가가 노동 통제 혹은 빈민 통제를 위하여 빈민 구제 활동을 해야하는 이유는 노동 통제가 시장기제에서 이루어지기에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근본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임

저자들에 따르면 유럽의 빈민 구제 제도는 16세기에 시작하는 전통적인 봉건 제도로부터 자본주의 제도로의 오랜 전환의 시기에 발생한 대규모 사회 혼란에 그 근원이 있음

 

빈민 구제의 시작

루즈벨트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규모의 빈민 구제가 시작됨. 미국 역사상 최초로 연방정부 차원의 빈민 구제 기구인 FERA를 만듦. 이것은 빈민 구제의 책임은 연방정부에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임. 이렇게 연방정부의 재정적인 지원하에, 근로 능력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빈민을 지원함. 1934년 말 약 2000만 명의 사람이 어떤 형태로든 빈민 구제의 대상이 되었고, 이는 당시 미국 인구의 약 6분의 1에 해당함

이후 직접 구제를 노동 구제로 바꾸고, 이어서 노동 구제도 줄이면서 실업자는 주나 시 정부의 책임에 둠. 그리고 근로 능력이 있는 빈민은 급여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근로 능력이 없는 빈민(노인, 장애인, 아동)에 대한 범주적 공공부조만 남게 됨

 

빈민정책

AFDC는 기본적으로 아동을 키우는 여성 세대주 가구에게만 급여함

복지국가의 성격에 관한 대비가 되는 관점은 두 가지로 대표됨. 하나는 사회민주주의이론 혹은 권력자원론의 관점으로, 복지국가는 정치적 민주주의 제도의 발전으로 노동계급의 정치적 힘이 커짐으로써,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있는 자본계급의 경제적 힘과의 계급투쟁에서 노동계급이 승리한 전리품으로 봄. 반면에 네오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복지국가는 자본주의의 경제위기 시기에 자본축적이나 노동력 재생산을 위하여 혹은 대규모의 사회 혼란을 진정시켜 정치적, 사회적 안정을 유지함으로써 단기적이든 장기적이든 본질적으로 자본계급의 이익을 위하여 존재한다고 봄. 이 책은 이러한 관점을 통해 현실적인 사례를 구체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책임

오늘날 복지국가는 흔히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함. 하나는 스웨덴을 대표로 하는 사회민주적 복지국가이고, 둘째는 유럽대륙 국가로 구성된 보수주의 복지국가이고, 셋째는 미국을 대표로 하는 자유주의적 복지구가임. 이러한 분류의 대표적인 기준이 탈상품화의 정도임. 198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서구의 복지국가는 재편되고 있음. 재편 방식은 복지국가 유형마다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볼 때 공통적인 방식은 근로 복지를 강조한다는 점임

 

빈민통제 일반화의 한계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은 공공 부조 이외에 일정한 인구학적 조건만 갖추면 누구에게나 급여하는 보편적 프로그램이나 기여를 바탕으로 급여를 하는 사회보험 있음. 사실 서구의 복지국가에는 이러한 두 프로그램의 규모가 공공 부조에 비하여 훨씬 크고, 빈곤을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가 있으며, 무엇보다도 공공 부조에 비하여 빈곤 제거 효과가 더 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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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론

슘페터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는 점차 활기를 잃어가면서 소멸하고, 대체적인 체제로서 사회주의가 자리 잡을 것으로 예측함

 

구성

1부 마르크스 학설

- 예언자적 측면에서 슘페터는 마르크스가 사회주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하층민이 중산층이 되어 좀 더 잘 살려고 하는 의지를 허위의식으로 매도하여 대중의 진지한 삶의 의지를 왜곡하였다고 비판함

- 사회학자로서의 측면에 대해서 슘페터는 마르크스의 유물론을 비판적으로 고찰함. 즉 생산양식이 사회구조의 기본적 결정 요소이며, 생산양식은 그 자체의 논리에 의해서 발전한다는 소위 역사의 경제적 해석에 대해서 의문시함

- 교사로서의 측면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관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슘페터는 마르크스가 계급 이론에 바탕을 두고 종합적으로 사회를 설명하였기 때문에 비교적 많은 추종자가 생겼지만, 실제로 자본주의 성숙을 통해 사회주의화된다는 그의 예측이 러시아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으므로 마르크스의 교의가 추종자들에게 그대로 전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평가함

 

2부 자본주의는 살아남을 수 있는가

- 자본주의는 성공하지만 성공 요인이 그 자신을 붕괴시키는 요인이 되어 결국 사회주의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는 독특한 주장을 함

- 이러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요인에는 첫째, 일반적인 정치적 불만이 자본주의에 대한 불만으로 발전하는 것, 둘째, 무산대중의 비판에 대해서 효과적으로 자본주의를 옹호하기가 어렵다는 것, 셋째, 개인적 실패를 체제의 잘못으로 돌리려는 태도 등이 있음

 

3부 사회주의는 작동할 수 있는가

- 산업 발전이 성숙되고 전환기에 나타나는 문제들이 잘 해소된다면 자본주의를 대체하여 나타나는 사회주의는 잘 작동할 것임

 

4부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 산업 발전이 성숙되고 전환기에 나타나는 문제들이 잘 해소된다면 자본주의를 대체하여 나타나는 사회주의는 잘 작동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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