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20.10.26 조정래 - 오 하느님
  2. 2020.10.26 영원한 자유인 - 성철스님 시봉이야기

역사를 아로새기는 고통

 

 

교수님의 소개로 작가 조정래의오 하느님이라는 작은 책을 교내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쌓인 눈이 조금씩 녹아가던 변두리의 저녁, 나는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숨겨진 역사의 이야기에 내 좁은 가슴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참말로 소설다운 소설이었다. 나는 보통, 소설은 이야기 전개의 필연성이 드러나야 한다고 여겼다. 물론 이 소설에서 필연성을 발견할 수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은 정말 우연과 같다고 느낄 정도로 기가 막힌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 내용이 단지 소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실제로 노르망디 해전에 독일군복을 입은 조선인이 참전했던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강자의 뜻대로 굴러가는 것이 사회이고, 강자에 의해 기록되어지는 것이 역사이기 때문에 약소국 조선의 힘없는 백성은 그가 왜 그 허허벌판에서 총을 들고 있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제2차 세계대전, 그 한가운데에 서있었던 것이다. 작가는 소설을 쓰면서 작중인물들에 대한 고달픔과 서러움을 느껴 몇 번이고 가슴으로 울었다고 말했다. 약육강식의 논리는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하나보다.

나는 몇 년 전에 반년 동안 스리랑카에서 자원 봉사 활동을 했다. 그 곳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스리랑카의 부조리한 사회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스리랑카는 현재 다수의 싱할라족과 소수의 타밀족이 권력다툼을 벌이고 있다. 여러 사회 부분에서 싱할라족은 타밀족을 차별한다. 종교, 언어, 문화가 다른 타밀족은 독립을 원하고 있지만, 스리랑카 정부는 절대 불허방침을 분명히 하며 그들을 무력으로 탄압한다. 타밀족은 타밀 군을 조직하여 싱할라족과 전쟁을 했고, 수도 콜롬보에서는 테러를 자행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이득을 얻은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싱할라족은 이득을 얻었을까? 물론 아니다. 스리랑카 정부는 지금의 전시 상황을 자기들의 권력 유지를 위한 명분으로 삼고 있다. 스리랑카의 경제발전은 뒷전이고, 국민들의 민주화는 갈수록 후퇴한다. 굶주리는 싱할라족, 학교에 가지 못하는 싱할라족 아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 타밀족은 말할 것도 없다. 결국 이득을 본 것은 권력 유지에 눈이 먼 소수의 지배층뿐이었다. 전쟁과 테러로 억울하게 죽어 간 영혼들의 넋을 그 누가 위로한단 말인가?

스리랑카만이 아니라 지금 전 세계에서 갈등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는 부지기수다.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탄자니아, 이라크 그리고 우리 민족의 또 다른 이름 북한까지.

국제사회의 강자나 사회 기득권층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비난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정당한 과정을 통해 권력을 얻은 정치가, 애민정신을 발휘하는 리더, 갈등을 폭력이 아닌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군부, 자국에 이익뿐만이 아니라 인류 사회의 진보에도 역량을 발휘하는 강자와 사회기득권층은 나도 아주 존경한다.

잊어버린 약자의 눈을 통해, 역사 소설을 쓰는 조정래와 같은 시대의 대변인들이 행하는 작업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책 속의 그들은,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잦은 풍랑을 맞으며 핏빛 영화의 한 장면을 장식했다. 이러한 조정래의 작업은 단순히 닳고 닳은 캐 묵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 제시일 것이다. 힘없는 소수가 자신의 의견을 언제든지 개진할 수 있고 그들을 존중하는 사회 시스템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은 아닐까? 특히 조정래처럼 이러한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 수 있는 유명 작가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즈음 사회에서는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판타지와 무협 소설, 연애 소설이 스테디셀러로 서점의 문학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한, 인문학의 위기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과제일 것이다. 문학이 인간 사회의 끼치는 영향을 실로 위대하다. 괴테의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출판되자 한동안 독일에서는 베르테르 세대라고 불리던 젊은 층의 자살률이 급격하게 높아진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소설 속에서 베르테르는 로즈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자 자살을 한다.) 문학이 담당한 기존의 역할을 다한다면 결코 문학에 대한 수요층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순수문학이 왜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정래, 공지영 등의 일부 작가들은 시대가 흘러도 왜 변치 않는 사랑을 독자들로부터 받고 있는지 이 글을 읽으며 나는 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내 이야기라도 되는 냥 소설속의 주인공이 되어 소설을 읽는 버릇이 있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주인공이 되어 제2차 세계대전의 한 가운데에서 나치 군복을 입고 어설프게 서있었다. 추운 바람이 살갗을 뚫고 들어와 따사로운 내 고장을 그리워하게 했고, 큰 키와 큰 코의 백인들의 매서운 눈빛에서 혹시나 총살당하지는 않을까하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것은 바로 향수(鄕愁)와 공포(恐怖)였던 것이다.

나의 고향은 구성진 남도가락이 구기자 밭을 타고 흐르는 보배의 섬진도이다. 나는 유학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애향이라는 단어가 내 가슴에 자리 잡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진도에 살면서 낙후된 환경에 사는촌스러운나는 명절에 세련된 옷을 입고 집에 오는 하얀 얼굴의 사촌 동생들에게까지 적잖은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생 된 후에 어릴 적 냇가에서 함께 멱을 감던 불알친구들, 낙지와 고동에 물씬 베인 갯냄새, 할머니가 구워주신 구수한 고구마가 그리워 남몰래 화장실에서 눈물을 훔친 적도 있다.

스리랑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상큼한 내 조국의 김치, 아름다운 한글로 쓰인 소설, 고단했던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온돌방이 못 견디게 그리워서 정해진 기간을 채우지 않은 채로 조기 귀국을 할까 생각하기도 했고, 한인 교회, 추석 한인 축제 등 한인 행사가 있을 때는 빠짐없이 참석했다. 내가 이 정도였는데, 원치 않은 채로 조선을 떠나 몽골을 거쳐 독일, 미국까지 가게 된 가난한 민초들의 향수는 얼마나 컸을까? 황폐하고 추운 소련으로 강제 이주돼 평생 고국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렸던 고려인들의 향수는 얼마나 컸을까? 그들은 다함께 포로로 수용 돼 고된 노동에 시달리다가, 우리 민족의 한이 담긴 민요를 구성지게 부른다.

아쉽게도 그들의 서글픈 민요는 끝끝내 조선에서는 들을 수 없는 것이었다. 세계열강들의 위대하고 잘난 목적 사이에서 그들이 주장한 내용은 모두 한낱 마이동풍과 같은 부질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뜻을 말이 안 통하는 백인들에게 알리기 위해 혈서를 썼던 그들의 간절함. 하루의 빵 두개와 맹물 같은 국을 마시며 중노동에 시달려도 저 버릴 수 없었던 귀국의 소망. 버티지 못한 동료들이 한 명, 두 명 죽어갈 때도 놓지 않았던, 끝끝내 부여잡고 놓지 않았던 생에 대한 의지. 두고 온 딸내미의 그 똘똘한 눈을 한 번만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그들은 그렇게 역사의 태풍에 맞서서 맨몸으로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어떻게 내 가슴으로 들여와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것일까? 현재 사회에는 아름다운재단, 지역아동센터협의회 등의 단체들이 있고 복지 정책은 날로 발전하여, 현재는 외면 받는 사람들이 과거에 비해 적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도 아사(餓死)당하는 이웃들이 있고, 부정과 가난으로 인해 집과 가족을 잃은 이웃들이 차가운 사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나 홀로 사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시민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활동들을 할 것이다.

더불어 나는 나의 사상과 철학을 더 깊게, 더 넓게 할 것이며, 사회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더욱 날카롭게 가다듬을 것이다. 작가처럼 펜이 아니더라도 당당한 시민으로서 투표를 하고, 비리를 감시하고, 내 삶에 천착되어 하루하루를 양심적으로 살아 갈 것이다.

희망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라 했다. 땅에는 애초에 길이 없었지만, 걸어가는 사람이 많으면 그것이 길이 되기 때문이다. 나도 사회가 아름답게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회에 진정한 유산을 남길 수 있는 훌륭한 사회인이 될 수 있는 나만의 길을 걸어 나갈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휘몰아치는 역사를 자신의 몸에 새기는 고통을 받았다. 나는 내 의지와 노력을 통해 역사의 진지한 순간들을 내 몸에 아로새기는 고통을 즐겁게 인내할 것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언젠가는 울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Posted by 이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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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자유를 꿈꾼다. 자유로운 감정을 찾기 위해 홀로 회사와 가정을 버려두고, 산으로 바다로 훌쩍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그렇게 몸뚱이만 떠나는 것이 과연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는 것일까? 이 책속에 떠나는 자유가 아닌 산속 작은 암자에 남아, 진정한 자유를 얻은 사람이 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재산, 가족에 대한 정 등 속세에 대한 바람 없이 부처님에게 귀의한 사람. 그 분이 바로 20세기의 부처라 불리었던 ‘성철’ 대 스님이다. 깨달은 자, 성철 스님은 말 그대로 진정한 자유인이었던 것이다.

 

이 책을 처음 만난 것은 내가 스리랑카로 파견되어 봉사활동을 할 때였다. 스리랑카의 유일한 한인들의 절인 사해사에서 탄경스님을 만나고 그곳에서 며칠씩 지내다가 ‘성철스님 시봉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그때는 반년이라는 비교적 긴 시간동안 고국을 떠나 외진 타국에서 활동을 하며, 심신이 몹시 지쳐가던 시점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내 삶의 나침반이었고, 불안한 정서와 지독한 향수의 한줄기 단비였다. 그 봉사활동을 조기 귀국하지 않고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던 것도 이 책을 통해 내가 불심을 찾으려는 내적 노력을 추구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팀원들과의 갈등, 현지 스텝들과의 갈등, 내 안에서 스스로 부족한 것을 느끼며 움츠러들었던 자괴감까지 책속에 담긴 성철스님의 낡은 사진 한 장으로 녹아듦을 느꼈다.


나는 크게 감명을 받고 탄경스님에게 청연이라는 법명까지 수계 받았다. 불자가 되어 부처님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나에게는 삶의 목적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일찍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더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사람인 반면에, 외로운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성철스님과 원택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더 꿋꿋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마침내 부처님께 귀의까지 하게 된 것이다.

 

나 같은 미천한 중생들은 육체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것이 현실의 짐을 내려놓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성철스님은 육체가 어디에 있든, 마음을 놓는 것이 진정한 자유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하안거나, 동안거를 할 때 작은 암자에서 몇 달을 가만히 앉아 수행만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스리랑카라는 큰 사회에서도 답답해 질식할 지경이었지만. 예전에 읽었던 한 책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투옥된 유명한 작가 한 분은 감옥이 내적 수행을 하는 최적의 장소라고 쓴 것을 본 적이 있다. 이처럼 누구에게는 감옥이 수행의 최적의 장소가 될 수 있고, 마찬가지로 성철 스님에게는 작은 암자가 우주 삼라만상을 마음껏 뛰노는 거대한 공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성철스님에게는 이름만을 들어도 느껴지는 묘한 아우라가 있다. 벌써 열반에 드신지 20년이 다 됐지만 지금도 그 아우라는 내게 유효하다, 아니 오히려 이 책을 읽고 나서 더 커졌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열반에 드셨으니, 지금도 그의 전 생애를 대략적으로 이해하기만도 어려운 나이이지만. 이미 그는 역사가 영원히 기억할 인물 중에 한 분이 되신 것 같다. 나는 미천하지만 용감하게 역사적인 인물과 조우하는 기쁨을 맛본다.


이 책은 원택스님이 성철스님을 시봉한 이야기이다. 원택스님은 독자들이 쉽게 이 책을 즐길 수 있도록 성철스님의 삶을 일화 중심으로 매우 사실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원택스님의 노고덕분에 성철스님의 사상이 내 좌심방에서 다시 태어나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성철스님을 만나 해인사에서 차라도 한잔 대접받은 기분. 차 맛은 쓰지만 달고, 산사는 고즈넉하다. 이 책을 읽으며 썼던 시를 뒤에 덧붙인다.

 

「부처님 오셨다 남루한 눈썹을 차마 들지 못하고
흙냄새 나는 곳에 한 발짝 두 손 짝 기어가
뿌리를 내리고 싶네.
부처님 나무되어 천만년 미소가 염화로 피었구나.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지요
부처님께 물으니
천진한 고승이 목탁을 두드린다.

보살님 차 한 잔 마시고 가시지요」

 

시봉이야기를 읽다보면, 우리 동네 뒷산에 올라가면 볼 수 있는 작은 절에 성철스님이 꼭 계실 것만 같다. 혹은 눈 내린 다음날 대문 앞을 쓸고 계신 옆집 아저씨가 꼭 성철스님처럼 생기셨을 것만 같다. 그렇게 성철스님이 이 책 한권으로 다시 우리 삶으로 돌아온 것이다.

 

아이들을 좋아했었다는 스님의 일화가 참말로 인상 깊었다. 성철스님처럼 도가 깊은 분이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친구가 아이들이였다니.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인간은 날 때부터 도를 타고 나지만 속세에서 때가 타서 도를 잊고, 결국은 도와 먼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본연의 모습 그대로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참된 도인 것을. 그래서 스님은 책을 읽지 말라고 하셨나보다. 정작 본인은 책을 많이 읽으셨지만, 책을 읽으며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닌, 이미 마음속에 있는 깨달음을 스스로 캐내었던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깨우치면 깨우칠수록 아이처럼 순수해졌을 성철스님의 두 눈을 실제로 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삶이 변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성철스님이라고 하면 부끄럽게도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라는 말 밖에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얼굴도 사진으로나마 제대로 본 적이 없다. 해인사호랑이라는 별명답게 막연히 용맹한 도인 같은 풍모시겠구나 라고 짐작했을 뿐이다. 역시 내 예상처럼 낡은 책속에 담겨진 그의 사진에서마저도 놀라운 기상과 도를 느낄 수 있었다. 실로 그 도가 얼마나 크기에 작은 사진 한 장에서 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성철스님뿐만이 아니라 한국 불교 근대사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와 유명스님들과의 다양한 일화들을 알 수 있었던 것도 흥미로웠다. 성철스님, 원택스님을 비롯하여 법정스님, 불필스님 등의 이름이 나올 때는 띄엄띄엄 알던 한국 불교 명승들의 흐름이 한 눈에 들어왔다. 원택스님처럼 훌륭한 스님이 나오실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성철스님이라는 대 스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며, 중생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준 원택스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한때는 격동의 한국의 20세기 역사를 배우며, 김수환 추기경, 문익환 목사등과는 다르게 사회참여에는 소극적이었던 성철스님을 비판적으로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성철스님은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불교와 사회에 대해 생각했고, 종교의 본연의 의미를 살리는데 주력했음을 이 책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과거 나치나 일제의 사상에 열광하며 그들을 추종했던 이들을 비춰보더라도, 올바른 앎 없는 무작정 행동만큼
무서운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올바른 앎, 진정한 자유, 절제와 구도, 순수와 자비, 나는 원택스님을 통해 성철스님을 알았고, 성철스님을 통해, 부처님을 만났고, 부처님을 통해 진정한 자유인을 꿈꾸는 삶을 살게 되었다.

Posted by 이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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