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구나 자유를 꿈꾼다. 자유로운 감정을 찾기 위해 홀로 회사와 가정을 버려두고, 산으로 바다로 훌쩍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그렇게 몸뚱이만 떠나는 것이 과연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는 것일까? 이 책속에 떠나는 자유가 아닌 산속 작은 암자에 남아, 진정한 자유를 얻은 사람이 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재산, 가족에 대한 정 등 속세에 대한 바람 없이 부처님에게 귀의한 사람. 그 분이 바로 20세기의 부처라 불리었던 ‘성철’ 대 스님이다. 깨달은 자, 성철 스님은 말 그대로 진정한 자유인이었던 것이다.

 

이 책을 처음 만난 것은 내가 스리랑카로 파견되어 봉사활동을 할 때였다. 스리랑카의 유일한 한인들의 절인 사해사에서 탄경스님을 만나고 그곳에서 며칠씩 지내다가 ‘성철스님 시봉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그때는 반년이라는 비교적 긴 시간동안 고국을 떠나 외진 타국에서 활동을 하며, 심신이 몹시 지쳐가던 시점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내 삶의 나침반이었고, 불안한 정서와 지독한 향수의 한줄기 단비였다. 그 봉사활동을 조기 귀국하지 않고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던 것도 이 책을 통해 내가 불심을 찾으려는 내적 노력을 추구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팀원들과의 갈등, 현지 스텝들과의 갈등, 내 안에서 스스로 부족한 것을 느끼며 움츠러들었던 자괴감까지 책속에 담긴 성철스님의 낡은 사진 한 장으로 녹아듦을 느꼈다.


나는 크게 감명을 받고 탄경스님에게 청연이라는 법명까지 수계 받았다. 불자가 되어 부처님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나에게는 삶의 목적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일찍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더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사람인 반면에, 외로운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성철스님과 원택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더 꿋꿋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마침내 부처님께 귀의까지 하게 된 것이다.

 

나 같은 미천한 중생들은 육체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것이 현실의 짐을 내려놓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성철스님은 육체가 어디에 있든, 마음을 놓는 것이 진정한 자유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하안거나, 동안거를 할 때 작은 암자에서 몇 달을 가만히 앉아 수행만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스리랑카라는 큰 사회에서도 답답해 질식할 지경이었지만. 예전에 읽었던 한 책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투옥된 유명한 작가 한 분은 감옥이 내적 수행을 하는 최적의 장소라고 쓴 것을 본 적이 있다. 이처럼 누구에게는 감옥이 수행의 최적의 장소가 될 수 있고, 마찬가지로 성철 스님에게는 작은 암자가 우주 삼라만상을 마음껏 뛰노는 거대한 공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성철스님에게는 이름만을 들어도 느껴지는 묘한 아우라가 있다. 벌써 열반에 드신지 20년이 다 됐지만 지금도 그 아우라는 내게 유효하다, 아니 오히려 이 책을 읽고 나서 더 커졌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열반에 드셨으니, 지금도 그의 전 생애를 대략적으로 이해하기만도 어려운 나이이지만. 이미 그는 역사가 영원히 기억할 인물 중에 한 분이 되신 것 같다. 나는 미천하지만 용감하게 역사적인 인물과 조우하는 기쁨을 맛본다.


이 책은 원택스님이 성철스님을 시봉한 이야기이다. 원택스님은 독자들이 쉽게 이 책을 즐길 수 있도록 성철스님의 삶을 일화 중심으로 매우 사실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원택스님의 노고덕분에 성철스님의 사상이 내 좌심방에서 다시 태어나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성철스님을 만나 해인사에서 차라도 한잔 대접받은 기분. 차 맛은 쓰지만 달고, 산사는 고즈넉하다. 이 책을 읽으며 썼던 시를 뒤에 덧붙인다.

 

「부처님 오셨다 남루한 눈썹을 차마 들지 못하고
흙냄새 나는 곳에 한 발짝 두 손 짝 기어가
뿌리를 내리고 싶네.
부처님 나무되어 천만년 미소가 염화로 피었구나.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지요
부처님께 물으니
천진한 고승이 목탁을 두드린다.

보살님 차 한 잔 마시고 가시지요」

 

시봉이야기를 읽다보면, 우리 동네 뒷산에 올라가면 볼 수 있는 작은 절에 성철스님이 꼭 계실 것만 같다. 혹은 눈 내린 다음날 대문 앞을 쓸고 계신 옆집 아저씨가 꼭 성철스님처럼 생기셨을 것만 같다. 그렇게 성철스님이 이 책 한권으로 다시 우리 삶으로 돌아온 것이다.

 

아이들을 좋아했었다는 스님의 일화가 참말로 인상 깊었다. 성철스님처럼 도가 깊은 분이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친구가 아이들이였다니.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인간은 날 때부터 도를 타고 나지만 속세에서 때가 타서 도를 잊고, 결국은 도와 먼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본연의 모습 그대로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참된 도인 것을. 그래서 스님은 책을 읽지 말라고 하셨나보다. 정작 본인은 책을 많이 읽으셨지만, 책을 읽으며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닌, 이미 마음속에 있는 깨달음을 스스로 캐내었던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깨우치면 깨우칠수록 아이처럼 순수해졌을 성철스님의 두 눈을 실제로 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삶이 변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성철스님이라고 하면 부끄럽게도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라는 말 밖에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얼굴도 사진으로나마 제대로 본 적이 없다. 해인사호랑이라는 별명답게 막연히 용맹한 도인 같은 풍모시겠구나 라고 짐작했을 뿐이다. 역시 내 예상처럼 낡은 책속에 담겨진 그의 사진에서마저도 놀라운 기상과 도를 느낄 수 있었다. 실로 그 도가 얼마나 크기에 작은 사진 한 장에서 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성철스님뿐만이 아니라 한국 불교 근대사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와 유명스님들과의 다양한 일화들을 알 수 있었던 것도 흥미로웠다. 성철스님, 원택스님을 비롯하여 법정스님, 불필스님 등의 이름이 나올 때는 띄엄띄엄 알던 한국 불교 명승들의 흐름이 한 눈에 들어왔다. 원택스님처럼 훌륭한 스님이 나오실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성철스님이라는 대 스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며, 중생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준 원택스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한때는 격동의 한국의 20세기 역사를 배우며, 김수환 추기경, 문익환 목사등과는 다르게 사회참여에는 소극적이었던 성철스님을 비판적으로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성철스님은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불교와 사회에 대해 생각했고, 종교의 본연의 의미를 살리는데 주력했음을 이 책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과거 나치나 일제의 사상에 열광하며 그들을 추종했던 이들을 비춰보더라도, 올바른 앎 없는 무작정 행동만큼
무서운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올바른 앎, 진정한 자유, 절제와 구도, 순수와 자비, 나는 원택스님을 통해 성철스님을 알았고, 성철스님을 통해, 부처님을 만났고, 부처님을 통해 진정한 자유인을 꿈꾸는 삶을 살게 되었다.

Posted by 이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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