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칠레하면 어떤 생각을 먼저 할까? -칠레 자유무역협정? 칠레산 와인? 아니면 길쭉하게 생긴 칠레의 국토? 지구 정반대의 나라?

사실 나 역시 칠레 역사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세계최초로 민주주의 선거로 세운 사회주의 국가가 칠레라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했고, 그들의 혁명이 광주민주화운동, 혹은 한국 현대사와 너무 닮아 마음이 아팠다.

어쩌면 라틴아메리카의 현대사는 미국 CIA의 군부 쿠데타 지원과 피의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독재정권의 억압에 맞서 민주주의와 평화를 염원하는 민중의 항쟁이 선연한 핏자국으로 점철된 고난의 역사이자 희망의 역사일 것이다. 그 가운데서 가장 비극적인 나라 중의 한 곳을 뽑으라면 아마 칠레라는 대답이 다수를 차지하지 않을까.

 

칠레 혁명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1970년 최초로 칠레에서 대통령선거로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4번만의 도전 끝에 성공한 살바도르 아옌데. 세계적인 평화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단일화에 성공한 그는 칠레국민에게 진정한 민주국가를 수립하고 진정한 칠레의 최초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한 사람이다.

 

칠레는 구리가 세계에서 가장 매장이 많이 돼 있는 곳 중 하나인데, 미국계 회사들이 이를 독점해 칠레 민중에게 돌아가는 이득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대통령에 당선된 아옌데 정부는 구리와 기타 산업들을 국유화 하며 토지개혁 등 여러 개혁을 시작한다. 자신의 기득권이 무너지는 꼴을 못 보는 우익세력과 자본가 세력은, 미국과 힘을 합쳐 아옌데 정부를 압박하기 시작한다. 미국은 구리재고를 풀어 구리 값을 폭락시키는 등의 경제봉쇄 정책을 펴고, 우익세력들은 주유소, 병원, 상점 등이 파업하게 하는 등 칠레의 경제를 계속 흔든다.

모든 책임은 아옌데 정부에게 돌아갔고 민심도 흔들리고 군부도 흔들리는 가운데 아옌데는 피노체트를 믿고 그를 3군 지휘관으로 임명하지만, 그는 미국과 우익세력을 등에 업고 3주 만에 쿠데타를 일으킨다.

작전명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가 라디오에서 계속 울려 퍼지고, 군은 대통령이 궁에서 나와 망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만 그는 끝까지 대통령궁에서 나오지 않고 국민들을 향해 마지막 연설을 한다.

"이번이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는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곧 마가야네스 라디오도 침묵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용기를 주고자했던 나의 목소리도 닿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계속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내가 이제 박해받게 될 모든 사람들을 향해 말하는 것은, 여러분들에게 내가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이야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나는 민중의 충실한 마음에 대해 내 생명으로 보답할 것입니다. 나는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우리나라의 운명과 그 운명에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이 승리를 거둘 것이고, 곧 가로수 길들이 다시 개방되어 시민들이 걸어 다니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보다 나은 사회가 건설될 것입니다.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입니다. 여러분은 나의 희생을 극복해내리라 믿습니다. 머지않아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해 위대한 길을 열 것이라고 여러분과 함께 믿습니다. 그들은 힘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력이나 범죄행위로는 사회변혁을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인민이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자유롭게 걷고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역사의 큰 길을 인민의 손으로 열게 될 것입니다."

 

나는 저 상황에서 아옌데처럼 저렇게 의연하게 행동할 수 있을까?

국가와 나의 신념을 위해서 목숨을 내던질 수 있을까?

미국의 9.11이 제국의 침략과 그에 대한 항거에서 일어난 불상사라고 읽을 수 있다면, 칠레의 9.11은 파시스트들이 민중의 힘으로 탄생시킨 지도자 아옌데를 제거하고 소수 자본가들의 특권을 연장하기 위한 반동의 불상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0년 이상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지금, 끝까지 총을 들고 저항했던 아옌데는 칠레인들의 가슴 속에 잊을 수 없는 영웅으로 자리매김 돼 있을 것이다.

 

스스로를 우파라고 칭하는 국내의 부패한 기득권에게 묻고 싶다. 우파는 최소한 도덕적의고 타국의 횡포에 분노하는 민족주의자여야 하지 않는가? 오늘의 한국사회에서는 비도덕적이고 자신의 기존 이익을 위해 단 한치도 양보하지 않은 채 최소한의 자존심도 내버리는 것을 단순히 우파라 칭하고 있지는 않은가? 김구 선생 같은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우파가 아니겠는가?

1973년 산티아고에는, 1980년 광주에는 비가 아니라, 피가 내렸고 눈물이 내렸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배반한 채 수구기득권세력의 인식과 논리에 동조하고 있지는 않는가? 무한한 상상으로 행동을 해보자. 꿈은 꾸는 자의 특권이고,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공화국의 모든 시민들이 물질적 복지와 정신적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역사적 임무일 것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언젠가를 울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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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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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이전의 쿠바

1898년 스페인에 점령돼있던 쿠바는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에 의해 독립은 인정됐지만 또 다른 종속을 당한다. 1930년대 선린정책을 주장한 루즈벨트에 의해 미국의 쿠바에 대한 종속 정책은 누그러든다. 이 시기 쿠바는 독재자 마차도의 실각이후 과도정부가 수립됐으나 바티스타 등 하사관이 주축이 된 쿠데타에 의해 다시 새로운 정부가 수립된다. 바티스타는 서민적인 정책을 펼쳐 자신의 독재기반을 넓혀갔다. 그의 집권 중 쿠바는 정치 경제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면에는 개인적인 치부와 부패가 심했으며, 쿠바는 미국의 경제적 식민지로 전락해갔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장기간 휴식을 취한 바티스타는 다시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았다. 그는 언론을 통제하고 대학을 폐쇄했으며 반체제 인사들을 투옥했다. 그리고 의회를 해산하고 계엄령을 선포하며 장기독재를 위한 권력 기반을 확보한다.

 

쿠바혁명

반미학생운동의 대부였던 카스트로는 폭력에 의한 혁명을 꿈꾸게 된다. 그는 몬카다 병영의 습격으로 대정부 무력투쟁을 시작하지만 이는 곧 실패한다. 그는 석방이 됐으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멕시코로 망명한다. 그는 체게바라를 만나 그린마호를 타고 쿠바로 나아가다 배가 암초에 부딪혀 좌초된다. 그 후 카스트로는 미국의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바티스타를 비난했고, 게릴라 군을 강화시켰다. 다시 바티스타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을 펼친 그는 승리했고, 수도 아바나에 입성하여 새로운 혁명 정부를 수립한다.

 

혁명 이후의 쿠바

카스트로는 석유법과 대기업 국유화법을 제정하여, 1960년 쿠바에 있던 미국인 소유 기업과 은행들을 모두 국유화했다. 미국은 경제제재를 가했지만, 러시아에 지원을 받은 쿠바는 사회주의화를 가속한다. 대농장에 토지를 소유하여 각 농가에 분배했고, 나머지 농민들은 농지개혁청이 관리하는 협동농장에서 농사를 짓게 했다.

미국은 바티스타의 잔존세력과 용병의 연합군을 쿠바에 침투시키지만 패배했고, 미국 내 쿠바자산 동결로 응수한다. 반면에 쿠바는 제당산업의 근대화에 주력했고, 지역과 주 단위의 선거를 실시하여 대의체제를 확립했다.

현재 쿠바의 전 인민이 12년간 무상 의무교육을 받고 있으며, 무상 의료 서비스 혜택을 누리고 있다. 학생이 10명 이하인 학교도 2,000여개에 달한다. 2008년 은퇴를 선언한 카스트로에 이어 그의 동생 라울 카스트로가 권자에 앉아있다.

 

쿠바의 한계

국가의 통제 속에 이루어진 사회주의 혁명의 과정은 다양한 이견들과 소수의 목소리들을 모두 포용하지 못했다. 양심수가 500명에 이르는 등 쿠바 정부는 지난 30년 동안 인권 침해에 대해 비판받았다. 쿠바 정부는 이론적으로는 계급 특권을 부정하는 입장이지만, 공산당원 또는 정부에 권력을 가진 자에 대한 우대가 존재한다. 교통, 직업, 주거, 대학 교육 그리고 보다 우수한 보건 혜택을 받는 것은 정부나 또는 공산당 내에서 신분을 가져야 가능하다. 보통 인민들은 외국의 초청이 없는 한 해외로 출국할 수도 없다. 다양한 인종으로 이루어진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기득권은 대부분 백인이나 메스티소가 소유하고 있다.

카스트로는 영화와 출판 산업 등 문화산업 분야도 장악했다. 이 때 쿠바인민들의 전통적인 축제마저 사라졌다. 쿠바의 문화예술인에게 혁명 옹호 이외의 문화 활동은 허용되지 않은 것이다. 한 때는 종교 역시 탄압의 대상이었다.

쿠바는 북한과 비슷한 검열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쿠바 정부는 인터넷을 21세기의 큰 질병이라고 부른다. 컴퓨터 소유가 금지되어 컴퓨터 보유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 인터넷을 이용할 권리는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허가되며, 이들도 감시받는다. 불법적인 인터넷 연결은 징역 5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

미국과의 관계악화 역시 쿠바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멕시코와 함께 라틴아메리카에서 왕따를 당하기도 했던 쿠바는, 소련의 붕괴와 미국의 패권이 강해지면서 경제봉쇄가 모든 나라로 확산되기에 이른다. 쿠바 내의 반군의 활동은 지속됐고, 극심한 경제난을 겪는다. 쿠바 정부는 주택, 선박, 농장 등에 세금을 부과했고, 부분적으로 자본주의 생산방식을 도입하지만 인민에게 부담만 안겨주었을 뿐 경제난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이에 카스트로는 인민의 대규모 국외로의 탈출을 허용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들을 인간쓰레기라고 매도했지만, 그들은 단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사회주의 체제하에서는 더는 삶을 지탱할 수 없다고 결심한 평범한 시민들일 뿐이었다. 무상 의료 서비스로 인해 의사들은 응급 환자에게 촌지를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암시장이 활발해지는 등의 도덕불감증 또한 팽배해졌다.

 

반쪽짜리 사회주의 혹은 실패한 사회주의

19945월 쿠바의 입법부가 가장 획기적인 개혁안을 통과시킨 이래 중요한 내용을 요약하면 세금부과, 적자를 내는 국영기업에 대한 지원 금지, 공적으로 제공되는 물품 및 서비스의 가격인상, 저축 장려, 외환순환의 통제(즉 페소화의 태환화 유도) 등이다. IMF가 권고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연상시키는 이러한 개혁안은 쿠바 사회내부의 계층 및 계급 간의 괴리를 확대하는 동시에 사회 중간층 이하의 삶을 매우 어렵게 만들 것임이 틀림없다. 이러한 정책이 비사회주의적 성격을 갖고 있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결국 쿠바 정부는 자본주의적인 것을 더 많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재정지출의 축소, 전 국민의 달러소지 자유화 등의 신경제정책을 추진한다. 라울 카스트로 역시 규제 완화, 배급 및 급여제도 개선을 시행한다. 사설 면허 택시의 허가, 임대 형식이기는 하지만 개인의 농지 소유 역시 허용된다. 뿐만 아니라 직원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이 원칙적으로 19.5달러의 월급을 받는다는 급여 상한 제한을 철폐하고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다. 사회주의적 경제제도를 보호하기 위해 시행했던 이중화폐제도 역시 단일화폐로 변화했고, 배급카드 제도마저 단계적으로 폐지되고 있다. 국영기업에 대한 자율권도 부여됐다. 쿠바가 반쪽주의 사회주의 혹은 실패한 사회주의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굿바이 레닌. 동독에서도, 쿠바에서도.

레닌은 공산주의 그 자체로 표현되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굿바이 레닌이라는 말을 풀어보면 공산주의의 몰락을 의미한다. 신념과 이상이 사라진 한바탕 꿈같은 20세기의 일이었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시작은 언제나 창대했지만 그 뒤에는 이 존재했다. 모든 이데올로기가 가진 꿈과 사랑은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하는 불완전한 것이다. 인간은 이념을 떠나보낼 때 슬픔과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그것의 끝이 존재한다고 해서 우리는 그것을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 끝에는 슬픔을 녹여줄 아름다운 불꽃과 같은 새로운 이상의 씨앗이 있기 때문이다.

동독인들은 통일된 독일에서 어떤 감정이었을까? 자본주의를 향해 나아가는 쿠바의 국민들은 현재 어떤 마음일까?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그들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실직, 상대적 빈곤감, 패배감과 굴욕감 같은 것들이었다. 동독의 많은 사람들은 어쩌면 통일되기 전의 동독 시절을 그리워 할 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쿠바 역시 훗날 가난했지만, 평등했던 20세기를 추억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영화는 순간순간 통일이 되었지만, 아직 갈등이 봉합되지 않는 서독과 동독의 상황을 보여주었다.

알렉스와 그의 어머니와, 지금도 무너져 내린 레닌이 그리운 벗들아. 슬퍼하지 말지어다. 사회주의는 몰락했지만, 인간 해방의 역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니까. 자본주의의 풍요와 빈곤, 차별과 격차 역시 언젠가는 사회주의의 길을 밟을 것이다. 그렇게 조용히 혁명은 진행된다. , 자동차, 가방, 안경, 사회를 보는 시선까지, 세상에는 바꿔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

 

참고문헌 사이트

쿠바 사회주의의 위기와 앞날, 권혁범, 사회과학원, 사상22, 1994.9, 155-189

쿠바혁명과 그 변천에 관한 연구, 최정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1990

라틴아메리카 리더스다이제스트

위키피디아

 

쿠바 사회주의의 위기와 앞날, 권혁범, 사회과학원, 사상22, 1994.9, p.11

Posted by 이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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