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덮어두면 곪는다. 곪은 상처는 터지지 않으면 썩은 채 굳어버린다. 역사적 상처도 마찬가지다. 곪아터지지 않고 썩은 채 굳어버려 치유할 수 없는 내상이 되기 전에, 그 상처를 들추고자 한다. -정지영 감독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기억은 그래서 더욱 중요할 것이다. 기억은 때때로 강력한 투쟁이 될 수 있다. 남영동1985는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 되는 야만적인 정치권력에 대한 기억의 영화다. 용서할 수 없는, 용서해선 안 되는 자들에 대한 기억의 영화이기도 하다.

군부독재시절처럼 사료가 남아있지 않은 시대 혹은 문헌 사료로 파악하기 어려운 문화, 정체성, 숨겨진 사실을 발굴하기 위해서, 본 영화처럼 자전적 수기와 구술사를 활용하는 것은 매우 적절했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김근태를 비롯한 고문피해자들의 자기 역사 쓰기는 역사의 자기화라는 의미를 지니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사회적인 것이자 정치적인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침묵을 강요받던 이들이 정치적인 삶을 사는 데 필수적인, 성찰적인 사유를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신의 앎을 활용하여 사회의 모순에 대해 건전한 비판과 저항 및 변화를 꾀함으로써 세상을 바로잡는 데 기여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비판적 또는 지성인적 지식인은 여러 사회에서나 오랜 역사과정에서 사회를 정화시키는 청량제 역할을 해오고 있다. 바로 민주주의자 김근태처럼 말이다.

영화로 들어가 보자. 군부 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1985, 민주화운동가 김근태는 가족들과 목욕탕을 다녀오던 길에 경찰에 연행된다. 예전부터 자주 경찰에 호출되었던 터라 큰일은 없으리라 여겼던 그는 정체 모를 남자들의 손에 어딘가로 끌려간다. 눈이 가려진 채 도착한 곳은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 공안수사당국이 빨갱이를 축출해낸다는 명목으로 소위 공사를 하던 고문실이었다. 이날부터 김근태는 온갖 고문으로 좁고 어두운 시멘트 바닥을 뒹굴며 거짓 진술서를 강요받는다. 아무 양심의 가책 없이 잔혹한 고문을 일삼는 수사관들에게 굽히지 않고 진술을 거부하는 김근태는 장의사라 불리는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등장하면서 거짓된 진술을 하게 된다.

사전에서 고문은 '범죄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서 육체적으로 가학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나오는데 실제 영화에서는 고문이란 게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고 거짓 정보를 주고 그것을 자기가 했다고 강요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었다. 특히 군사 독재 정권 시절, 정치적 배경이 깔린 고문은 거짓정보를 만들기 위해서 거짓말을 강요하는 차원의 부조리함이 강했다.

영화 속 김근태에게 가해지는 고문은 물고문에서 시작하여 칠성판이라고 이름 붙여진 고문대 위에서 가해지는 전기고문으로 이어진다. 고문의 강도가 점점 높아질수록 나에게 전이되는 고통의 수치 역시 증가했다. 힘에 억압된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겪었던 역사의 한 장면을 보면서 나는 스스로 질문했다. ‘나는 고문이 주는 공포심을 떨쳐내고 거짓 진술서를 거부할 수 있었을까?’ 고문이 강해질수록 나는 신음을 토하면서 거짓 진술서를 써가는 김근태의 행동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나라면 절대로 굴복하지 않았을 것이라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고문의 강도가 증가하면서 김근태는 더욱 고통스러워하지만, 고문을 가하는 자들의 행동은 그저 평온하기만 하다. 그들에게 고문은 일상적인 업무일 뿐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사장이나 전무 같은 일반 회사의 직급 명칭들이 붙었을까? 애국심이란 핑계로 행해지는 고문 행위들. 그들은 전무의 자리에서, 또는 과장으로서 충실히 고문을 수행한다. 엔딩크레딧과 함께 나온 영상의 고문 피해자들 역시 그들에게 가해진 고문의 공포와 그 기억을 두고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입을 모았다. 그 정도로 고문은 끔찍했고 입에 담기 어려운 악몽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대공분실에서 라디오는 꽤 흥미롭고도 그로테스크한 장치로 보였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스포츠 중계는 그 당시 시대상을 증명하는 지표였다. 또한, 프로야구 중계를 듣는데 집착하는 강 과장의 모습이나 유명우 선수의 타이틀 매치라도 듣자고 화답하는 이근안의 모습에서 비일상적인 행위인 고문과 일상성의 행위인 라디오 청취가 뚜렷하게 대비됐다. 동시에 그 당시의 정권이 사람들의 관심사를 어떻게 돌려놓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라디오는 지금 우리가 그 시대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망각이 만들어낸 유산은 고작 프로야구 내지는 권투 정도이다.

영화 말미 고문을 통해 모든 거짓 진술을 받아낸 이근안은 김근태에게 "그럴 일 없겠지만, 세상이 바뀐다면 그때 날 찾아와 고문하세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었고 그들은 뒤바뀐 운명으로 재회한다. 무릎을 꿇고 김근태에게 사죄하는 이근안. 그렇지만 고문을 가하면서 이근안이 휘파람으로 불던 노래는 멈추지 않는다. 고문을 가하게끔 명령한 배후세력이 부는 휘파람은 대선을 앞두고 여전히 우리의 귓가에 들려오고 있다.

 

국가란 무엇이고 법이란 무엇인가? 사회적 안정성을 이유로 한 법리는 일면 수긍할 수 있다 치더라도 폭력을 독점한 국가의 인권 유린행위는 어떻게 단죄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무릎 꿇은 이근안을 보며 느꼈던 것은 국가에 의한 고문은 피해자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가해자 자신의 존엄성과 나아가 인류 전체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행위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87, 서울의 봄과 함께 서울의 고문이 사라졌다고 볼 수 있을까? 나는 우리나라가 아직 고문에서 벗어났다고 보지 않는다. 피의자나 관련자들의 조사과정에서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가하는 모든 사소한 고통, 혹은 형이 확정된 사람들의 형 집행과정에서 일어나는 비인간적인 대우 등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를 넒은 의미의 고문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진리가, 왜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일까? 남영동1985가 남영동2012에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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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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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이전의 쿠바

1898년 스페인에 점령돼있던 쿠바는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에 의해 독립은 인정됐지만 또 다른 종속을 당한다. 1930년대 선린정책을 주장한 루즈벨트에 의해 미국의 쿠바에 대한 종속 정책은 누그러든다. 이 시기 쿠바는 독재자 마차도의 실각이후 과도정부가 수립됐으나 바티스타 등 하사관이 주축이 된 쿠데타에 의해 다시 새로운 정부가 수립된다. 바티스타는 서민적인 정책을 펼쳐 자신의 독재기반을 넓혀갔다. 그의 집권 중 쿠바는 정치 경제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면에는 개인적인 치부와 부패가 심했으며, 쿠바는 미국의 경제적 식민지로 전락해갔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장기간 휴식을 취한 바티스타는 다시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았다. 그는 언론을 통제하고 대학을 폐쇄했으며 반체제 인사들을 투옥했다. 그리고 의회를 해산하고 계엄령을 선포하며 장기독재를 위한 권력 기반을 확보한다.

 

쿠바혁명

반미학생운동의 대부였던 카스트로는 폭력에 의한 혁명을 꿈꾸게 된다. 그는 몬카다 병영의 습격으로 대정부 무력투쟁을 시작하지만 이는 곧 실패한다. 그는 석방이 됐으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멕시코로 망명한다. 그는 체게바라를 만나 그린마호를 타고 쿠바로 나아가다 배가 암초에 부딪혀 좌초된다. 그 후 카스트로는 미국의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바티스타를 비난했고, 게릴라 군을 강화시켰다. 다시 바티스타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을 펼친 그는 승리했고, 수도 아바나에 입성하여 새로운 혁명 정부를 수립한다.

 

혁명 이후의 쿠바

카스트로는 석유법과 대기업 국유화법을 제정하여, 1960년 쿠바에 있던 미국인 소유 기업과 은행들을 모두 국유화했다. 미국은 경제제재를 가했지만, 러시아에 지원을 받은 쿠바는 사회주의화를 가속한다. 대농장에 토지를 소유하여 각 농가에 분배했고, 나머지 농민들은 농지개혁청이 관리하는 협동농장에서 농사를 짓게 했다.

미국은 바티스타의 잔존세력과 용병의 연합군을 쿠바에 침투시키지만 패배했고, 미국 내 쿠바자산 동결로 응수한다. 반면에 쿠바는 제당산업의 근대화에 주력했고, 지역과 주 단위의 선거를 실시하여 대의체제를 확립했다.

현재 쿠바의 전 인민이 12년간 무상 의무교육을 받고 있으며, 무상 의료 서비스 혜택을 누리고 있다. 학생이 10명 이하인 학교도 2,000여개에 달한다. 2008년 은퇴를 선언한 카스트로에 이어 그의 동생 라울 카스트로가 권자에 앉아있다.

 

쿠바의 한계

국가의 통제 속에 이루어진 사회주의 혁명의 과정은 다양한 이견들과 소수의 목소리들을 모두 포용하지 못했다. 양심수가 500명에 이르는 등 쿠바 정부는 지난 30년 동안 인권 침해에 대해 비판받았다. 쿠바 정부는 이론적으로는 계급 특권을 부정하는 입장이지만, 공산당원 또는 정부에 권력을 가진 자에 대한 우대가 존재한다. 교통, 직업, 주거, 대학 교육 그리고 보다 우수한 보건 혜택을 받는 것은 정부나 또는 공산당 내에서 신분을 가져야 가능하다. 보통 인민들은 외국의 초청이 없는 한 해외로 출국할 수도 없다. 다양한 인종으로 이루어진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기득권은 대부분 백인이나 메스티소가 소유하고 있다.

카스트로는 영화와 출판 산업 등 문화산업 분야도 장악했다. 이 때 쿠바인민들의 전통적인 축제마저 사라졌다. 쿠바의 문화예술인에게 혁명 옹호 이외의 문화 활동은 허용되지 않은 것이다. 한 때는 종교 역시 탄압의 대상이었다.

쿠바는 북한과 비슷한 검열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쿠바 정부는 인터넷을 21세기의 큰 질병이라고 부른다. 컴퓨터 소유가 금지되어 컴퓨터 보유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 인터넷을 이용할 권리는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허가되며, 이들도 감시받는다. 불법적인 인터넷 연결은 징역 5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

미국과의 관계악화 역시 쿠바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멕시코와 함께 라틴아메리카에서 왕따를 당하기도 했던 쿠바는, 소련의 붕괴와 미국의 패권이 강해지면서 경제봉쇄가 모든 나라로 확산되기에 이른다. 쿠바 내의 반군의 활동은 지속됐고, 극심한 경제난을 겪는다. 쿠바 정부는 주택, 선박, 농장 등에 세금을 부과했고, 부분적으로 자본주의 생산방식을 도입하지만 인민에게 부담만 안겨주었을 뿐 경제난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이에 카스트로는 인민의 대규모 국외로의 탈출을 허용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들을 인간쓰레기라고 매도했지만, 그들은 단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사회주의 체제하에서는 더는 삶을 지탱할 수 없다고 결심한 평범한 시민들일 뿐이었다. 무상 의료 서비스로 인해 의사들은 응급 환자에게 촌지를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암시장이 활발해지는 등의 도덕불감증 또한 팽배해졌다.

 

반쪽짜리 사회주의 혹은 실패한 사회주의

19945월 쿠바의 입법부가 가장 획기적인 개혁안을 통과시킨 이래 중요한 내용을 요약하면 세금부과, 적자를 내는 국영기업에 대한 지원 금지, 공적으로 제공되는 물품 및 서비스의 가격인상, 저축 장려, 외환순환의 통제(즉 페소화의 태환화 유도) 등이다. IMF가 권고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연상시키는 이러한 개혁안은 쿠바 사회내부의 계층 및 계급 간의 괴리를 확대하는 동시에 사회 중간층 이하의 삶을 매우 어렵게 만들 것임이 틀림없다. 이러한 정책이 비사회주의적 성격을 갖고 있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결국 쿠바 정부는 자본주의적인 것을 더 많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재정지출의 축소, 전 국민의 달러소지 자유화 등의 신경제정책을 추진한다. 라울 카스트로 역시 규제 완화, 배급 및 급여제도 개선을 시행한다. 사설 면허 택시의 허가, 임대 형식이기는 하지만 개인의 농지 소유 역시 허용된다. 뿐만 아니라 직원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이 원칙적으로 19.5달러의 월급을 받는다는 급여 상한 제한을 철폐하고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다. 사회주의적 경제제도를 보호하기 위해 시행했던 이중화폐제도 역시 단일화폐로 변화했고, 배급카드 제도마저 단계적으로 폐지되고 있다. 국영기업에 대한 자율권도 부여됐다. 쿠바가 반쪽주의 사회주의 혹은 실패한 사회주의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굿바이 레닌. 동독에서도, 쿠바에서도.

레닌은 공산주의 그 자체로 표현되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굿바이 레닌이라는 말을 풀어보면 공산주의의 몰락을 의미한다. 신념과 이상이 사라진 한바탕 꿈같은 20세기의 일이었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시작은 언제나 창대했지만 그 뒤에는 이 존재했다. 모든 이데올로기가 가진 꿈과 사랑은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하는 불완전한 것이다. 인간은 이념을 떠나보낼 때 슬픔과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그것의 끝이 존재한다고 해서 우리는 그것을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 끝에는 슬픔을 녹여줄 아름다운 불꽃과 같은 새로운 이상의 씨앗이 있기 때문이다.

동독인들은 통일된 독일에서 어떤 감정이었을까? 자본주의를 향해 나아가는 쿠바의 국민들은 현재 어떤 마음일까?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그들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실직, 상대적 빈곤감, 패배감과 굴욕감 같은 것들이었다. 동독의 많은 사람들은 어쩌면 통일되기 전의 동독 시절을 그리워 할 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쿠바 역시 훗날 가난했지만, 평등했던 20세기를 추억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영화는 순간순간 통일이 되었지만, 아직 갈등이 봉합되지 않는 서독과 동독의 상황을 보여주었다.

알렉스와 그의 어머니와, 지금도 무너져 내린 레닌이 그리운 벗들아. 슬퍼하지 말지어다. 사회주의는 몰락했지만, 인간 해방의 역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니까. 자본주의의 풍요와 빈곤, 차별과 격차 역시 언젠가는 사회주의의 길을 밟을 것이다. 그렇게 조용히 혁명은 진행된다. , 자동차, 가방, 안경, 사회를 보는 시선까지, 세상에는 바꿔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

 

참고문헌 사이트

쿠바 사회주의의 위기와 앞날, 권혁범, 사회과학원, 사상22, 1994.9, 155-189

쿠바혁명과 그 변천에 관한 연구, 최정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1990

라틴아메리카 리더스다이제스트

위키피디아

 

쿠바 사회주의의 위기와 앞날, 권혁범, 사회과학원, 사상22, 1994.9, p.11

Posted by 이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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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웬

사회 비평 2020. 10. 26. 14:32

오웬의 말처럼 통치의 목적은 지배를 받는 사람과 지배자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배를 받는 사람과 지배자 모두 불행한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지배자와 피지배자,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불신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바꿔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오웬의 말처럼 변하지 않는 일관성으로 참됨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변하지 않는 참된 것이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그것이 존재한다는 가정부터 참이어야 오웬의 신성한 것만을 가르치자는 주장으로 논의가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세상에 변하지 않는 참된 것이 존재한다고 가정을 해보자. 그렇기 때문에 범죄를 가르치는 법률을 폐지하자는 그의 주장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금 같은 지구촌 사회에 법이 없다면? 오웬이 살던 시대만 해도 꽤 큰 덩어리로 사회가 존재했는데, 법을 없앤다면 더 큰 혼란이 있지 않았을까? 하다못해 단군조선시대 때도 8조금법이라는 것이 존재했는데? 사회의 크기에 따라 법률의 필요성이 증가하므로, 오웬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웬의 교육에 대한 주장들을 보며, 지지난 대선에서 평생교육을 주장했던 문국현 전 의원, 곽노현, 김상곤 교육감 등이 생각났다. 오웬이 현재 우리나라에 있다면, 자의반 타의반으로 분명히 진보교육감으로 출마하겠지. 그런데 현재 서울교육감인 문용린을 이길 수 있을까? 위대한 지도자를 갖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위대함이 아니라, 지도자의 위대함을 알아보는 시민들의 안목이라는 점에서, 나는 오웬이 문용린에게 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다.

그가 당시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들을 고민하고 제안한 것은 높이 평가되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원론적인 점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에서 아쉽다. 또한 진리에서 법률로, 법률에서 교육으로, 교육에서 일자리로 나아가는 그의 글의 화두가 다소 유연하게 연결되지 못하는 것도 안타깝다.

반면에 꼭 오늘자 신문의 칼럼을 읽는 것처럼, 현대 사회에도 그대로 들어맞는 그의 이야기를 보며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오웬은 시대를 관통하는 위대한 학자구나가 전자요, 교육과 일자리를 비롯한 사회의 전 분야에서의 진보는 당연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가 후자다.

Posted by 이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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