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는 감각을 불신하고, 진리로의 이성을 강조하였다. 이성에 대한 방법론적 회의주의를 통하여 인간이 이성적 사고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신 중심의 세계관이 아닌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다룬 철학의 시초인 것이다.

물론 신을 약화시키고 인간 중심의 사고를 확장시킨 것은 의의가 있다. 예를 들면, 왕권, 신권, 귀족권의 약화를 통해 평등사상의 기초를 닦았고, 합리성을 사회에 널리 퍼뜨렸다. 하지만 다소 아쉬운 것은 데카르트의 생각이, 우리 사회에서 인간만을 지나치게 강하게 만드는 생각이라는 것이다. 이성을 가진 인간이 강해지다 보니까, 당연히 서양에서는 자연 위에 인간이 군림하는 모습이 당연한 것 같아 씁쓸하다. 인간이 아니라 자연 혹은 동물의 일부로 흑인들을 보았던 그들이, 흑인들을 노예로 부리면서도 얼마큼의 죄책감을 가질 수 있었을까.

데카르트가 신의 개념을 바꾸거나, 새롭게 해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강하게 남는다. 신을 자연, 혹은 우주, 에너지의 덩어리, 생명 등의 개념으로 만들었다면, 인간만큼 다른 생물들이 지구에 주인이 되는 모습이 되지 않았을까?

 

"무엇이든 의심하고 의심하라"는 데카르트의 문제의식은 크게 공감한다.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모든 것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청년은 일상 속에서 의심하는 능력을 더욱 길러야 한다.

예를 들면 내가 받고 있는 낮은 아르바이트 임금이 정말로 적절하고 옳은 것인지 의심할 수 있다. 더불어, 등록금을 내고 학교에 다니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 의심할 수 있다. 이러한 의심은 새로운 학문을 닦고, 세상에 뿌려질 아이디어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의심이 쌓이고 쌓이면, 인간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까지 생각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러므로 사회적 감각이든 육체적 감각이든, 이러한 의심은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개념이여야 한다. 의심은 모든 행동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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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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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컨 - 시기심

도서 비평 2020. 10. 26. 14:21

시기심에 관한 프랜시스 베이컨의 약3페이지에 달하는 글이었다. 특히, 내가 주목한 부분은 공적인 시기심에 관한 부분이었다. 베이컨은 사적인 이기심과 달리, 공적인 이기심의 긍정적인 부분에 집중했다. 공적인 시기심은 강대한 자들을 견제할 수 있는 심리적 배경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악의에서 불만으로, 불만에서 반란으로 이어진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하지만 공적인 시기심의 한계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시기심은, 공화국이나 제국 자체보다는, 주로 지위가 높은 관리나 대신에게 집중된다는 것이다.

베이컨의 주장에 나는 상당부분 동의하지만, 그것을 단순히 시기심으로 환원해서 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불만이 있다. 예를 들어, 부패한 관리를 비판할 때, 우리는 그 비판하는 감정을 시기심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우리는 그 관리의 위치와, 부귀영화가 부러워서 그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단순히 시기심이라고 부를 경우, 그것이 그러한 감정을 갖는 개인의 질투와 표출되지 못한 욕망으로 치환돼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적인 시기심이 강대한 자들을 견제할 수 있는 심리적 배경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어찌 되었든 시민 대다수가, 권력을 가진 자들에 대한 강한 견제를 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더라도 이러한 사실은 명백하다. 선거기간동안 국내의 입후보자들은, 자신의 간도 쓸개도 빼줄 것처럼 유권자들을 현혹하지만, 막상 당선이 되고나면 그러한 유권자들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감정이 명명백백히 다른 것이다. 그러한 권력을 언제든지 견제할 수 있는 시선을 간직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이러한 감정이 발달해 국민소환제도 같은 견제장치가 생겼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공적인 시기심이 공화국이나 제국 자체보다는, 주로 인물에게 집중된다는 사실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우리나라만을 봐도 그렇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이데올로기적, 사회구조적인 여러 문제들은 주로 특정 인물에게 집중된다. 경제가 어려우면 노무현 탓이다, 이명박 탓이다라며 대통령 한 사람을 비판하는데서 논의가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공적인 시기심을 본질적인 측면에서 우리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수준의 논의까지 끌어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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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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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세계를 공유물로 주신 하느님은 또한 그들에게, 삶에 최대한 이득이 되고 편의에 봉사하도록 세계를 이용할 수 있는 이성을 주셨다. 로크는 위와 같은 말로 시민정부를 설명하면서, 자연법이란 이성의 목소리로 하나님의 목소리와 동일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어서 로크는 자연 상태의 인간은 이런 자연법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부연 설명한다. 하지만 나는 로크의 이와 같은 생각에 반대한다. 나는 인간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때에 따라 비합리적이고 감성적인 행동을 일삼는다.

로크는 범죄자들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친다.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이미 이성을 잃었으므로 인간이 아닌 난폭한 동물과 다름없다. 하지만 범죄를 저지른 자들 중에는 이성을 잃지 않은 자들도 많다.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 혹은 불의에 항거하는 범죄도 인간이 아닌 난폭한 동물이 행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로크는 자연법은 완전하나 그것을 적용하는 인간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로크가 말한 이성의 목소리가 하나님의 목소리와 동일하다고 말한 것에 정반대되는 의견이다. 자가당착인 것이다.

그리하여 인류는 자연 상태에 따르는 온갖 특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거기에 남아 있는 동안 단지 열악한 상황에 시달리게 되므로 급기야는 사회에 들어가려고 서두른다. 로크는 국가와 정부 탄생의 배경이 인간의 상호신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데, 이것도 어불성설이다. 상호신뢰 없이 정부는 얼마든지 만들어진다. 전쟁 중에도 만들어지고, 쿠데타로도 만들어진다. 나는 대한민국의 탄생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고, 그것은 대한민국 탄생 중에 살아계셨던 나의 조부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 할머니는 농사만 짓고 있었을 것이다.

로크의 사유재산권은 더 황당하다. 노동만이 사유재산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로크가 다음과 같은 종에 대한 관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갖는 특정한 종류의 실체 관념사람들이 감각기관의 경험과 관찰에 의해서 공존하는 것으로 지각되는성질과 힘들의 관념으로 구성되어 있다. 로크의 노동과 사유재산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이론이 기득권의 지배논리로 이어질까 두렵다. 아니 이미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 로크의 사유재산권이 정설이라면, 왜 노동자들이 일하지 않는 부자들보다 더 가난하다는 말인가? 축적된 부의 격차가 점점 증가하고, 불로소득 등의 사유재산이 발생하며, 이는 끊임없이 사회문제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자본(자본)으로 인하여 오늘날 인간은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다. 이웃의 동의 없이 노동만으로 얻을 수 있는 사유재산이라는 말에는, 반론하는 것마저 짜증난다. 이웃의 동의 없어도 가질 수 있는 사유재산이라면, 나는 지금 우리 집 뒷산의 등산로를 다 막고 거기에 농작물을 심어서 내 것이라고 하겠다! 소유권으로 인해 공동체가 무너지고, 공동선은 배제된 채로 개인의 권리 주장만이 난무한다. 로크의 소유권 개념은 농경사회를 배경으로 탄생되었으므로 자연 속 재화는 고갈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가 있다. 그러나 현재 세계 각지에서 공유지의 비극이 우려되는 것처럼 이에 대한 논란은 분분하며, 개인의 소유권이 충돌할 경우 누구의 편을 들어주어야 하는가? 등의 비판 역시도 받을 수 있다.

더불어, 노동 이전의 자연물에 가치가 없다는 그의 주장도 틀렸다. 노동, 즉 인위적인 것이 자연물에 투입됐을 때, 오히려 자연물의 가치가 떨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4대강사업. 두말할 나위 없다.

로크는 나를 실망시켰다. 로크의 책은 내 마음 속에 들어오기 위해 노크했지만, 나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참고문헌>

1. 김만권. 정치사상. 개마고원. 2005.

2. John Locke. Two Treatises of Government(1690). (강정인/문지영 역, 통치론, 까치, 1996).

3. Michael Ayers. Locke(1997). (강유원 역, 로크, 궁리, 2003).

 

1) John Locke, Two Treatises of Government(1690), (강정인/문지영 역, 통치론, 까치, 1996, p.34)

2) 김만권, 정치사상, 개마고원, 2005, pp.41~42

3) 위의 책, p.42

4) John Locke, Two Treatises of Government(1690), (강정인/문지영 역, 통치론, 까치, 1996, p.121)

5) Michael Ayers, Locke(1997), (강유원 역, 로크, 궁리, 2003, p.78)

Posted by 이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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