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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5시

영화 비평 2020. 10. 26. 15:13

어릴 적 대마초를 팔던 몬티는 소방수 아버지처럼 되고 싶었지만, 마약 밀매 범이 된다. 집안에 숨긴 마약이 발각돼 검거된 몬티는 보석으로 풀어준 아버지 덕분에 일주일간의 자유를 가진다. 7년의 수감생활에 대한 두려움, 그 후에 전과자로서 살아가야 할 길이 지금부터 걱정인 그에게 세상은 절망뿐이다. 게다가 자신의 범행 사실을 경찰에 알린 사람이 연인이자 동거하고 있는 내추럴일 것이라는 소문에도 시달린다.

우리 모두는 하루 24시간을 살아간다. 그리고 내일 다시 24시간을 산다. 24시간을 어떻게 쓰느냐는 어제 자신이 산 24시간에 달려있다. 몬티는 감옥으로 가기전의 24시간동안 모든 걸 정리하려 한다. 아버지와 저녁식사를 하고, 아끼는 애완견도 친구에게 맡기고, 친구, 애인과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그러나 그 24시간에는 여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감옥으로 간 뒤 자신에 대한 신뢰가 여전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친구들에 대한 의구심 등 즐거운 24시간을 채우기에는 버거운 번민들이 가득하다. 그가 화장실 거울을 들여다보며 분노하는 모습도 나온다. 자신이 아닌 모든 외부의 것에 대해 혐오하기 시작한다.

몬티가 마지막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미래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몬티의 가장 절친한 친구는 자신이 가르치는 한 여학생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소심하고 인기 없는 고등학교 교사다. 다른 친구는 잘 나가는 증권 거래사지만, 그의 삶을 답답하게 만드는 것은 자신의 마음이 몬티의 애인에게 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가치관이 있다. 그리고 그 가치관을 바탕으로 모든 관찰되는 사실에 대한 주관적인 견해를 갖는다. 그리고 그 주관적인 견해에 부합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몬티처럼 스스로의 생각이나 가치관에 도전을 보이는 다른 견해를 누르고 싶은 욕망,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인간들 사이에서도 그러한 욕망은 꿈틀대기 시작한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는 억지가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이다. 몬티의 24시간에는 어제의 불행을 막지 못한 우리의 망연자실함과, 우리에게 벌어진 끔찍한 사건에 대한 도발적인 분노가 있다. 우리는 내일 어떤 시간을 맞이하게 될까.

25시는 테러 이후의 뉴욕을 배경으로 한 첫 번째 영화라고 한다. 어쩌면 감옥행을 앞 둔 한 사내의 지극히 사적인 경험은 테러로 황폐해진 미국의 집단정서 속으로 편입되고, 헤어날 길 없는 이 혼란스러움은 골을 더해가는 인종문제, 그리고 정치인과 기업인들의 현기증 나는 탐욕 속으로 삼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몬티는 그의 24시간을 보내고, 그에게 엿 같은 7년의 시간을 안겨줄 교도소로 아버지의 차를 타고 간다. 그때 아버지는 그에게 도주를 제안한다. 철저히 자신을 숨기며 예전의 기억은 모두다 마음속에 비밀로 홀로 간직한 채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 하지만 그 제안도 해피엔딩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엉망이 된 얼굴로 교도소로 향하는 그의 모습은 이미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과거의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지나간 어제의 족쇄에 묶여 끌려가는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길 원하는가, 나에게 25시로 향하는 탈출구가 주어지길 원하는가. 25시는 꿈 혹은 잔인한 시간일 뿐, 사람에게 주어지는 건 24시간뿐이다. 다시 돌아와 남는 건 현실의 잔인함뿐인 것이다. 언젠가 후회할 순간이 돌아와 새로운 25시를 갈망하지 않게, 주어진 24시간을 나름대로 충실하고 정직하게 보내야 한다. 그것이 거울 앞에 선 나를 보는 것이든, 거리를 걷는 수많은 다른 인종과 마주하는 것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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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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