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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0.26 플러그를 뽑으면 지구가 아름답다

나는 어린 시절 섬마을에서 자랐다. 공기가 맑았던 그 마을에는, 여름에 냉방을 위해 창문을 닫아놓은 집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더우면 창문을 열고 부채를 치거나 선풍기를 켜는 게 전부였으며, 에어컨이 있는 집은 단 한 채도 없었다. 돈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아무도 에어컨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전 아버지의 기일에 고향을 찾았을 때, 예전과는 달리 창문을 열어둔 집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미 우리나라 방방곡곡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으면 더위를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변온동물화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만난 책이 일본 최고의 발명가인 후지무라 야스유키의 플러그를 뽑으면 지구가 아름답다이다. 환경부 지정 우수환경도서라는 스티커가 책에 대한 신뢰를 한층 높여주었다. 이 책은 막대한 에너지소비와 갖은 화학물질들로 만연한 현대사회의 폐해와, 그로 인한 환경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그의 철학과 성과가 잘 반영되어 있다. 다양한 사진과 이해하기 쉬운 저자의 설명은, 글을 더욱 풍요롭게 하였다.

저자는 전략화에 반하는 비전력화라는 개념을 통해 오염된 현대사회의 대안을 제시한다. 한마디로 불필요한 플러그를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비전력화에 공감하고 응원하는 소비자는 아직 소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감대는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나도 저자의 의견에 공감하고 환경의 입장에서 비전력화를 실천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 환경이라는 단어 속에서 불편이라는 의미만을 끄집어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에너지를 절약하는 일상 속에서 나는 도리어 안락함을 느꼈다. 자취방에서 어머니가 사준 내복을 입으며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이겨냈고, 텔레비전과 컴퓨터의 플러그를 뽑았을 때 주위를 돌아볼 여백이 내 일상에도 생겨났다. 어린 시절 난방비를 절약하기 위해 한 방에 둘러앉은 우리 형제가 서로를 불편하다고 느꼈던 순간은 단 한 차례도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나이를 먹고, 요즘 들어 심해진 복부비만은 책의 내용과는 반대로 내가 지금껏 추구해온 쾌락편리의 결과일 것이다. 나는 복부비만의 주범인 다디단 커피를 무척 즐긴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전기포트를 자주 사용하는데, 저자는 전기포트가 전기냉장고보다 더 많은 전력을 소비하는 만큼 사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작은 쾌락과 편리를 버리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는 말은 이러한 상황에 쓰이리라. 내가 전기포트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복부비만도 해소되고, 좋은 환경도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전기포트를 혼자 자취하는 친구에게 주고, 새로 압력솥을 하나 구입했다. 압력솥으로 밥을 지으면 솥 안은 고온이 되고 재료 조직이 느슨해져서 열이 빨리 전달된다고 한다. 이렇게 압력솥으로 조리를 하면 불을 끈 후에도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므로 불을 사용하는 시간과 양이 훨씬 적게 든다. 따라서 가스 소비도 일반 솥보다 4분의 1밖에 하지 않아도 된다. 전기밥솥은 보온과 대기전력도 취사와 거의 비슷한 양의 전력을 소비한다. 때문에 최종적으로 압력솥은 전기밥솥의 20분의 1 이하의 에너지만 사용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나는 책을 통해 변화된 나의 일상을 사회참여로까지 이어가고 싶었다. 뭔가 환경을 위해 뿌듯하고 유익한 활동을 하자고 벼르고 있던 찰나에, 환경부와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에너지의 날행사를 돕는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봉사를 통해 책의 연장선에서 다양한 친환경에너지제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처럼 저자의 말대로 플러그를 뽑는 일은 그것으로만 끝난 것이 아니라, 나에게 새로운 세계의 창을 여는 일이었다. 그것은 인간과 환경의 지속과 다양성을 생각하는 일이며, 문명의 보다 커다란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각의 의지를 마음에 담아, 천천히 이어지는 환경의 물결을 지구에 펼쳐나가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더 아름다워질까?

Posted by 이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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