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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9.22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연대별 대남 주요 도발 사례 및 평가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연대별 대남 도발 현황

1950년대에는 정치적 테러리즘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1958년 민항기 납북사건이 대표적인 예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는 대남도발이 본격적으로 자행된 시기이다. 항공기와 어선 납치, 김신조 일당의 대통령 암살 기도 사건 등이 있었다.

1980년대에는 대남도발이 절정에 이르는 시기이다. 1983년 미얀마 랑군에서 전두환 대통령 암살기도, 1987년 칼기 폭파 등이 있었다.

1990년대 초는 대화와 통일의 공세 시기이다. 1990년대 중후반은 안보 위협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이다. 대남 도발은 동해안 강릉에 상어급 잠수함이 침투하여 무장간첩 24명이 사살되고 1명이 생포되었다. 이어서 서해의 북방한계선에서 한국해군과 북한해군과의 제1차 연평해전(1999. 6. 15.)이 발생했다. 엔엘엘을 월선한 북한 경비정을 한국 함정이 밀어내기식 작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북한 경비정의 선제공격으로 교전이 시작되어 북한의 어뢰정 1척이 침몰되고, 경비정 4척과 어뢰정 1척이 손상되었다.

2000년대는 대남유화시기이지만 대남 도발은 지속됐다. 2002. 6. 29. 북한 해군 경비정의 선제공격에 의해 제2차 연평해전이 발발하여 한국해군 고속정이 침몰하고 다수의 전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어서 북한은 전격적으로 1차 핵실험(2006. 10. 9.)을 감행하여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제 1650호와 1718호에 의거 국제사회의 제재를 초래했다.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강경기조를 유지하자 북한은 초기 단계에서는 각종 구두협박을 하다가 점차 탄도미사일 발사(2009. 2. 24.), 2차 핵실험(2009. 5. 25.)등의 강경 대응으로 위기의 수준을 점진적, 단계적으로 높여 갔다.

2010년대는 가장 강력한 무력 도발이 발생한 시기이다. 천안함 폭침은 백령도 근해에서 초계임무를 수행하던 천안함이 폭침(2010. 3. 26.)되어 46명이 전사한 사건으로, 국내외의 전문가로 편성된 정부의 민군합동조사단이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하였음을 공식 발표하였다. 이 도발로 인해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보위기가 고조되었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천안함 공격을 규탄하는 의장 성명을 채택하였다(2010. 7. 8.). 더욱 강도 높은 무력 공격은 연평도 포격이다. 천안함 폭침 이후 8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북한군은 대낮에 연평도의 군부대뿐만 아니라 무방비 상태의 민간인 거주 지역에도 170여 발의 무차별 포격을 가해(2010. 11. 23.) 민간인 2명과 군인 2명이 사망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 영토에 대한 최초의 직접적인 무력공격이었다.

 

북한 대남 도발의 평가

환경적측면

- 한국 요인 + 미국 요인

- 안보 위협이 높아지면 대남도발을 돌파의 수단으로 이용

의사결정체계의 측면

- 정치적 활용

- 국가전략체계의 영향

수단의 측면

- 화전양면전략을 구사

안보환경과 대남도발 시기와의 상관관계

-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습체제 구축 시기로 후계자 선전과 업적 쌓기, 북한 주민들의 체제 결속을 위한 것으로 보임

- 당의 민간 출신 대신 군부가 대남 공작기구를 장악한 시기로 군부를 통해 어느 때보다도 극력한 군사모험주의의 도발을 수행

- 한국에서 국제적 행사 개최 시점으로 한국 내에 극도의 혼란 상태를 유발하여 국제행사를 방해하기 위한 목적

- 한국의 새로운 정부 출범 시기로 위기 조성을 위해 남남갈등을 유발하여 새 정부의 대북 정책을 북한에 유리하도록 유도하면서 대미, 대남 협상에서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해서임.

Posted by 이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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