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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9.23 벤딕스 「왕이냐 인민이냐」

개론

이 책은 절대주의 국가에서 민주적 지배로 이행을 경험한 여러 사회의 불균등하고 위기로 점철된 역사를 추적한 대표적인 역작으로, 사회 행위의 가장 추상적인 유형과 개별 역사적 양상의 특수성을 매개하는 중간 수준의 분석 방법을 보여주었으며, 베버 역사사회학의 결정판임.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각 국가(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러시아)가 택한 역사적 특수성의 문제를 이해할 필요성을 강조함. 때문에 이 책은 벤딕스가 평생 수행해온 연구의 확대판인 동시에 집대성이라는 평가를 받음

왕이냐 인민이냐는 세계사적 차원에서 나타난 두 가지의 서로 대안적인 정부 토대인 세습 왕조와 인민주권 정부에 대한 분석서임

 

벤딕스

벤딕스는 1916년 독일의 베를린에서 태어나 반나치 지하조직에서 활동하다가 탈출하여 미국으로 이주함. 이후 사회학과 교수가 되었다가 정치학과로 전공을 바꾸고 1991년 사망함

그의 3대 주요 저작은 산업세계에서의 직무와 권한’, ‘국가 건설과 시민권’, ‘왕이냐 인민이냐를 통해서임

 

구성

이 책은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음. 1부에서는 각 장별로 프랑스를 제외한 4대 주요 국가의 군주제 발전을 16세기까지 추적하고 있으며, 2부에서는 인민주권의 이름으로 정당화된 근대 정치로의 이행을 고찰함. 이러한 구성은 연대기적이고 기원론적 설명을 강조하는 저자의 역사주의적 시각을 반영함

 

근대화의 양상

왕이냐 인민이냐의 중심 가설은 각 나라의 사회 변화는 전시효과의 결과, 즉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모방하려는 엘리트의 노력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임. 벤딕스의 목적은 권위의 진화에 관한 비교 역사적 연구를 통해 역사 과정이 사회경제적 세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마르크스의 명제를 시험하는데 있음

이 책의 주제는 다음의 다섯가지임.

- 첫째, 왕의 권위는 내외적 권력투쟁은 물론, 권위에 최종적인 정당성을 부여한 종교적 인가를 통해 구축됨. 왕권은 신성불가침적이었지만 왕의 권위는 항상 위험에 처해있었으며 따라서 계속해서 건재함을 나타내지 않으면 안됨

- 둘째, 왕들은 그들이 권위를 위임한 귀족들의 도움으로 자기영역을 통치함. 왕의 지배에 대한 귀족의 복종이 당연한 규범이었지만 중앙 권위와 지방정부 간의 긴장은 계속 관리되지 않으면 안되었으며, 결코 해결될 수 없었음

- 셋째, 인민의 이름에 의한 권위는 점진적 변화를 통해 왕권을 대채함. 왕의 권위는 토지와 정부 관직의 상업화와 교육받은 평민들의 고위직 진출로 약화됨. 이런 조건에서 교육받은 엘리트들이 선진국의 발전을 따라잡고자 하는 과정에서 인민주권으로 권위를 재구성하려는 아이디어들이 특수 엘리트들에 의해 제기됨

- 넷째, 왕권 체제에서 인민주권 체제로의 이행은 모든 나라에서 일어났지만, 그 과정은 매우 다양함. 따라서 각 나라에서의 인민주권 제도화 모델은 구체적인 역사적 경험 속에서 차별적으로 나타남

- 다섯째, 인민주권에 의한 정부의 확산은 지속적인 운동이었음. 왜냐하면 보다 후진적인 나라는 보다 선진적인 나라의 모델에 의해 자국의 경계 안에서 권위를 재구성하도록 자극받았기 때문임.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러시아, 중국은 모두 민족주의를 경험했고 인민주권의 정부를 구성했지만 그 방식은 상이함. 근대화 과정에서 각국이 부딪치는 문제는 독특했으며 이 때문에 각국의 근대화 모델은 저마다의 역사적 경험과 현실에 의해 다르게 나타남

 

근대화의 양상 - 5개국

스페인을 준거 사회로 했던 영국은 구교와 신교의 갈등으로 야기된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왕을 중심으로 국민을 동원하는데 성공함. 다른 한편 전쟁 비용 부담을 위한 왕의 조세권을 둘러싼 투쟁의 결과, 왕의 조세권이 제약되고 권력이 의회로 이전됨

프랑스는 강력한 군대와 절대주의적 정부를 선호하여 영국을 모델로 삼으로 했지만 미국의 독립전쟁에 참여하면서 영국의 제도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생기고, 민주적 이상을 향한 민중의 동원을 가능케 했을 뿐만 아니라 왕에 대한 조세 부담을 가중시켜 프랑스 혁명을 유발함

군사적 근대화를 시도하던 독일은 프랑스 문화와 국가 조직을 모방함. 하지만 프랑스는 군사적인 적국이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 전쟁을 일으켜 독일을 점령했기 때문에 부정적 모델로 전락함.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은 영국을 보수적인 근대화의 모델로 택함. 독일의 의회는 보수적인 롤 모델의 선택에 따라 왕의 권한을 제약하는데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함. 그러나 이렇게 보수적인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이룩한 프러시아는 명치일본의 모델이 됨. 1853년 미국의 흑선 침략으로 자극을 받은 일본에서는 보수 혁명이 일어나 근대적 군대와 프러시아식 헌법 체계의 의한 국가 제도를 확립함. 프랑스의 혁명 전통과 독일의 실패한 지하 혁명 운동은 차르 체제를 무너뜨리고 근대화를 시도한 공산주의자들의 모델이 됨. 여기서 벤딕스가 강조한 것은 어느 경우이건 외국의 준거 사회가 위기에 처한 각국의 모델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임

 

선발국의 경험으로부터 얻는 신생국의 교훈

첫 번째 교훈은 혈연이나 종족적 유대로 인해 빚어지는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시민적 유대를 어떻게 육성하느냐 하는 것임. 근대 국가는 비가족적이고 비인격적인 권위의 토대 위에서 발전할 수 있음. 두 번째 교훈은 취약한 정치 제도 때문에 인민의 궁극적 주권이 시련을 겪고 있는 신생국의 정치적 문제에 관한 것임. 선발국의 경우 왕권에서 인민주권으로의 이동은 장기간에 걸친 군사적 역학 관계의 산물임. 세 번째 교훈은 민족주의에 의존한 신생국의 정통성 확보 노력과 연관된 것임

 

비판

첫째, 방법론적으로 볼 때, 이 책은 통제 불능이 된 케이스 스터디 접근법의 전형적인 예로서, 정치사회학 이론이나 개념을 찾아볼 수 없음. 실제로 전시효과에 대한 강조와 이념의 독립적인 역할에 대한 주장이 설득력 있는 이론적 분석으로 이어지지 못함. 결국 이 책은 일반 사회학적 본질을 결여한 역사주의적 해설서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됨

둘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논의를 무시함으로써 협소한 이상주의로 후퇴했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 일방성의 함정에 빠져 벤딕스 자신이 비판했던 마르크스주의의 일방성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비판을 받음. 결국 벤딕스는 각각 분리된 이념에 지나치게 인과적 설명력을 부여함으로써 현상학적 전통의 다른 한편, 즉 사회 현실의 실체와 그 관계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입장을 거의 무시했다는 비판을 받음

마지막으로 이념과 전시효과에 대한 초점 때문에 이 책은 지나치게 엘리트 집단에 대한 논의에만 사로잡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됨.

Posted by 이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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